장운경(張雲景, 1894년~미상)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다. 평안남도 강동 출신으로, 1911년 평양의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에 진학하여 1925년 또는 1926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평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생애 초기에는 1920년 동아일보 평양지국 강동분국장으로 활동하였고, 강동읍교회와 성천읍교회에서 조사 및 담임목사로 봉직하였다. 1924년 장로교 평양노회 서기로 피선되었고, 1929년 평양노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1930년 장로회 총회 서기를 역임하는 등 교회 내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장로회 총회 회계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1938년 평양노회 대표로 일본을 시찰한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1939년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를 면직하는 과정에 참여하였고, 1940년 주기철 목사가 담임이던 평양 산정현(산성현)교회를 폐회할 때 수습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국민총력연맹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연맹 이사장을 지냈으며, 1943년 일본기독교조선교단 설립을 위한 교파합동위원으로서 장로교 측 대표를 맡는 등 친일적 행보를 보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의 기독교 부문에 장운경이 수록되었다. 구체적인 사망 연도와 사망 이후의 행적은 현재까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