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張讓/張楊)은 중국 후한 말기의 인물로, 《삼국지》 및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다만 동일한 한자 표기(張讓, 張楊)가 아닌 두 명의 다른 인물이 모두 '장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1. 장양(張讓, ? ~ 189년)
후한 말기의 환관으로, 십상시(十常侍)의 우두머리격 인물이다. 영제(靈帝)의 총애를 받으며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다. 169년 후람(侯覽)과 함께 당고의 금(黨錮之禁)을 일으켜 청류파 인사들을 대거 숙청하였고, 각종 뇌물을 수수하는 등 부정 축재를 일삼았다. 189년 영제가 사망한 후, 대장군 하진(何進)이 환관 세력을 제거하려 하자 이에 맞서 십상시의 난을 일으켜 하진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원소(袁紹) 등 하진의 부하들이 궁궐을 공격하자 소제(少帝)와 진류왕(陳留王, 훗날 헌제)을 데리고 도망쳤으나, 노식(盧植) 등에게 추격당하자 강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유사하게 묘사되며, 대중매체에서는 주로 십상시의 수장으로 등장한다.
2. 장양(張楊, ? ~ 198년)
자는 치숙(稚叔) 또는 아숙(雅淑)이며, 병주(幷州) 운중군(雲中郡) 출신의 군벌이자 정치가이다. 용맹하여 병주의 무맹종사(武猛從事)가 되었고, 후한 말 혼란기에 하진(何進)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이후 독자적인 세력을 키웠다. 동탁(董卓)에게서 건의장군(建義將軍)·하내태수(河內太守)로 임명되었다. 같은 병주 출신인 여포(呂布)와 인연이 깊어, 여포가 원소(袁紹)를 떠나 의탁하자 그를 받아들였다. 헌제(獻帝)가 낙양으로 환도할 때 식량을 지원하고 궁궐을 수리하는 등 공을 세워 안국장군(安國將軍)·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고, 대사마(大司馬)에 임명되었다. 198년 조조(曹操)가 여포를 공격하자 여포를 도우려다 부하 양추(楊醜)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잔여 세력은 수고(眭固)가 이끌었으나 조조에게 패하여 소멸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반동탁연합군에 한 명의 제후로 참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정리
'장양(삼국지)'이라는 표기는 위 두 인물을 모두 가리킬 수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장양(삼국지)'라는 표제 아래 나무위키 등에서는 환관 장양(張讓)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군벌 장양(張楊)은 별도로 '장양(후한)' 또는 '장양(후한 태수)'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