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자오(章士釗, Zhang Shizhao, 1881년 3월 20일 ~ 1973년 7월 1일)는 중국의 학자, 정치평론가, 사회활동가이다. 자(字)는 행엄(行嚴), 필명은 황중황(黃中黃)·청동(靑桐)·추동(秋桐)이며, 한자음으로는 장사쇠라고도 읽는다.
생애 개요
청나라 말기 호남성 장사현에서 태어났다. 1903년 혁명 성향의 신문 《소보(蘇報)》의 주필을 지냈으며, 같은 해 '소보안(蘇報案)'으로 체포·투옥되었다. 출옥 후 황흥(黃興) 등과 함께 반청 혁명 비밀 조직인 화흥회(華興會)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대학에서 유학했고, 1907년에는 영국 애버딘 대학교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법학·정치학·논리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중화민국 북경정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돤치루이(段祺瑞) 정부의 사법총장 겸 교육총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 루쉰(魯迅) 등 진보적 지식인과 갈등을 빚었고, 백화문(白話文) 운동에 반대하며 후스(胡適)와 논쟁을 벌였다. 1930년대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천두슈(陳獨秀)를 변호하기도 했다.
1949년 국공화담(國共和談)에 참여한 후 베이징에 잔류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전국정협 상임위원, 중앙문사연구관 관장 등을 지냈다. 1973년 홍콩에서 92세로 사망하였다.
주요 평가
장스자오는 청말·민국·공산정권 시기를 두루 거친 지식인으로, 정치적 입장이 시기에 따라 변화한 인물이다. 초기에는 혁명 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후 점차 보수적 입장으로 선회하였으며, 일생 동안 문언문(文言文)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오쩌둥(毛澤東)과는 청년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으며, 마오가 프랑스 유학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