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쉐량(張學良, 1901~2001)은 20세기 중국의 군인 겸 정치인으로, 만주 지역의 군벌이었던 장쭤린(張作霖)의 장남이다. 중국어 병음 표기로는 장쉐량(Zhāng Xuéliáng)이며, 한국어에서는 장학량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버지 장쭤린이 '노원수(老帥)'로 불린 데 비해, 장쉐량은 '소원수(少帥)'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장쉐량은 1901년 6월 4일 청나라 만주 지역(현재 중국 랴오닝성)에서 태어났다. 1928년 아버지 장쭤린이 일본 관동군의 열차 폭격으로 사망한 이후, 봉천군벌(봉계 군벌)의 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아 동북 지역의 실질적 통치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국민혁명군에 편입되어 동북군을 지휘하였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36년 12월 12일 발생한 시안 사건(西安事變)이다. 당시 장쉐량은 산시성 시안에서 중국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를 감금하고,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지하고 일본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은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되어 중국이 전면적인 항일 전쟁에 나서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장쉐량은 장제스에 의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수십 년간 구금 및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장쉐량은 1949년 이후 타이완으로 이주하여 장기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으며, 1991년에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서 생활하였다. 2001년 10월 1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사망하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크게 갈린다. 중국 본토에서는 시안 사건을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하여 그를 항일 전쟁에 기여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만주 사변 당시 부저항 명령으로 만주 지역을 일본에 빼앗긴 책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장쉐량 자신은 육성 회고록에서 시안 사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