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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송 (후한)

장송(張松, ?~212년)은 중국 후한 말기의 정치인으로, 익주목 유장(劉璋) 휘하의 별가종사(別駕從事)를 지냈다. 자는 자교(子喬)이며, 익주 촉군 성도현(현 쓰촨성 청두) 출신이다.

《익부기구잡기》(益部耆舊雜記)에 따르면, 장송은 형 장숙(張肅)에 비해 키가 작고 방탕하여 절조가 없었으나, 식견이 높고 사물의 이치에 밝았으며 총명하고 과단성이 있어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208년(건안 13년), 유장이 조조에게 사절을 파견할 때 장송이 세 번째 사자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당시 조조는 형주를 평정한 직후로 교만한 상태였고, 장송에게 영창군 비소현령(比蘇縣令)이라는 낮은 관직만을 제안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장송은 조조가 적벽 대전에서 패한 후 유장에게 조조와의 관계를 끊고 유비(劉備)와 제휴할 것을 권하였다. 유장이 사자를 묻자 장송은 평소 친분이 있던 법정(法正)을 추천하였고, 이로써 유장과 유비의 연합이 성사되었다.

법정이 유비를 만나고 돌아와 유비에게 웅대한 계략이 있다고 전하자, 장송과 법정은 유장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비를 받들기로 모의하였다. 211년, 조조가 한녕태수 장로(張魯)를 정벌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장송은 유장에게 유비를 불러들여 장로를 치게 하고 익주를 보호하자고 설득하였다. 주부 황권(黃權)과 왕루(王累)가 반대했으나 유장은 이를 받아들여 법정을 시켜 유비를 초청하였다.

유비가 익주에 도착한 후, 장송은 법정을 통해 유비에게 유장을 그 자리에서 습격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유비는 이를 거절하였다. 212년, 유비가 방통(龐統)의 계책에 따라 거짓으로 형주로 돌아가려 하자, 장송은 이를 진짜로 믿고 유비와 법정에게 편지를 보내 "대사가 실현될 참인데 어찌 가버리느냐"고 만류하였다. 이 편지가 장송의 형인 광한태수 장숙에게 발각되어 유장에게 고발되었고, 유장은 장송과 그의 일가를 참수하였다.

한편 배송지(裴松之)가 《삼국지》 선주전에 주석으로 인용한 위소(韋昭)의 《오서》(吳書)에는, 법정이 유비와 밀약하기 전에 장송이 먼저 유비를 대면하여 익주의 병기·물자·인마의 수량과 요해처 정보를 제공하고 지도까지 그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유장전》, 《선주전》, 《법정전》의 본문에는 장송이 유비에게 파견된 기록이 없어,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고이》에서 이를 《오서》의 오류로 보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송이 이마가 좁고 머리가 뾰족하며 들창코에 뻐드렁니이고 키가 5척도 안 되는 추남으로 설정되었으며, 자도 영년(永年)으로 바뀌어 널리 알려졌다. 조조의 병서 《맹덕신서》를 한 번 보고 암송하는 과목불망(過目不忘)의 일화와, 유비에게 파촉지형도를 헌납하는 장면이 유명하나 이는 소설적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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