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張飛, ? ~ 221년)는 중국 후한 말에서 삼국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촉한(蜀漢)의 장군이다. 자는 익덕(翼德)이며, 탁군(涿郡) 주(涿) 사람이다.
생애
초기 생애와 의형제
젊어서 유비(劉備), 관우(關羽)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고 형제가 되었다. 세 사람 중 막내로, 유비를 큰형, 관우를 둘째 형으로 모시고 평생을 함께하며 촉한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요 전투 및 활약
- 장판교 전투(長坂橋戰鬪, 208년): 조조(曹操)의 대군이 추격해 올 때, 유비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장판교(長坂橋)를 지켰다. 눈을 부릅뜨고 창을 가로질러 "나는 장비 익덕이다. 누가 감히 나와 싸우겠느냐?"라고 호통치니, 조조 군사는 그 기세에 놀라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이 일화로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 익주 평정(益州 平定, 212~214년): 유비를 따라 익주(益州)로 들어가 유장(劉璋) 토벌에 공을 세웠다. 특히 엄안(嚴顔)을 생포하여 항복시키는 등 무용을 떨쳤다.
- 한중 전투(漢中 戰鬪, 217~219년): 한중 공방전에서도 활약하며 촉한의 영토 확장에 기여했다.
죽음
219년 관우가 동오(東吳)의 여몽(呂蒙)에게 패해 죽은 후, 장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동오 정벌을 강력히 주장했다. 221년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고 대대적인 동오 정벌을 준비하던 중, 장비는 부하 장달(張達)과 범강(范疆)에게 살해당했다. 두 사람은 장비의 머리를 가지고 동오로 투항했다. 시호는 환후(桓侯)이다.
성격과 평가
- 성격: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장비전(張飛傳)에 따르면 "용맹함은 관우와 비견되었으나(勇烈亞於羽)", 성정이 급하고 잔혹하여 부하를 가혹하게 다스렸다. 제갈량(諸葛亮)은 장비에게 "그대는 형벌을 너무 혹독하게 다스리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다"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 학문적 소양: 무장임에도 불구하고 서화(書畫)에 능하고 문사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어, 단순한 무인 이상의 교양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 역사적 평가: 진수(陳壽)는 "관우와 장비는 만인적(萬人敵)이라 불리니 당세의 호걸이다"라고 평했다. 다만 관우가 국사(國士)의 풍모를 지녔다면, 장비는 호방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데 급급한 면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의 차이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비가 술을 좋아하고 주사(酒邪)가 심하며, 매질로 부하를 죽여 결국 반란을 유발한다는 설정이 강화되어 있다. 역사서 《삼국지》에서는 주벽(酒癖)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부하를 혹독하게 다스린 점만이 지적된다. 또한 연의에서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주무기로 쓰나, 정사(正史)에는 구체적인 무기 명칭이 기록되지 않았다.
가계
- 아들: 장포(張苞), 장소(張紹)
- 딸: 장성후(張星后), 장경후(張敬后) - 두 딸 모두 유선(劉禪)의 황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