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리 콜로데르부아

장마리 콜로데르부아(Jean-Marie Collot d'Herbois, 1746년 6월 19일 ~ 1796년 6월 8일)는 프랑스 혁명기의 배우, 극작가이자 정치인이다. 공포 정치 시기 공안위원회(Comité de salut public)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급진적인 혁명가로 이름을 알렸다.

생애 및 활동

혁명 이전에는 순회극단의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정치계에 입문하였으며, 자코뱅 클럽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1792년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군주제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793년 9월, 공안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등과 함께 국정을 주도하였다. 특히 리옹에서 발생한 반혁명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을 당시, 수많은 사람을 대포로 사살하는 등 잔혹한 처형 방식을 주도하여 '리옹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테르미도르 반동과 말년

공포 정치가 극에 달하던 시기, 로베스피에르와의 갈등 및 자신의 숙청에 대한 공포로 인해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에 가담하여 로베스피에르 일파를 실각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에도 과거 공포 정치 시기의 행적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았다.

1795년 제르미날 폭동 이후 체포되어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로 유배되었으며, 1796년 그곳에서 황열병으로 사망하였다.

평가

그는 혁명 초기 민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웅변가이자 극작가였으나, 공포 정치 시기 보여준 극단적인 폭력성과 잔인함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사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로베스피에르를 축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역시 공포 정치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로 간주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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