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리 귀요(Jean-Marie Guyau, 1854년 10월 28일 ~ 1888년 3월 31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프랑스 마옌주 라발에서 태어났으며, 33세의 나이로 폐질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짧은 생애 동안 철학, 윤리학, 미학, 사회학, 교육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저술을 남겼다.
생애
장마리 귀요는 1854년 프랑스 라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 귀요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아내 오귀스틴 튈르리와 헤어졌고, 이후 어머니는 사촌인 철학자 알프레드 푸이예와 재혼하였다. 귀요는 계부 푸이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플라톤, 칸트, 종교사 및 철학을 접했다. 17세의 나이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에픽테토스의 《핸드북》을 번역하였다. 19세에는 1,300쪽 분량의 논문을 발표하여 1874년 프랑스 도덕정치학술원으로부터 상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콩도르세 리세에서 철학 강사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곧 폐질환 증상이 나타나 남프랑스로 요양을 떠났고, 그곳에서 철학 저술과 시 창작을 계속하다가 1888년 멍통에서 사망하였다.
철학 사상
귀요의 철학은 에피쿠로스, 에픽테토스, 플라톤, 임마누엘 칸트, 허버트 스펜서, 알프레드 푸이예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주요 관심 분야는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저서인 《의무와 제재 없는 도덕의 개요》(Esquisse d'une morale sans obligation ni sanction, 1884)에서 그는 의무, 제재, 강제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는 도덕 이론을 제시하였다. 귀요는 공리주의와 실증주의가 도덕 이론에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하면서, 도덕적 행위의 동기를 다섯 가지 요소(내적 우월성의 의식, 관념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 감수성의 융합과 사회화된 쾌락, 행동의 위험에 대한 사랑, 형이상학적 가설에 대한 사랑)로 설명하려 하였다.
미학 분야에서는 칸트의 '미적 판단은 무관심적이다'라는 주장을 반박하고, 아름다움은 감각적·지적·도덕적 차원을 모두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예술의 목적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공감을 창출하는 데 있으며, 예술이 사회를 개혁하고 새롭게 형성하는 힘을 가진다고 보았다.
시간 철학에 관한 저서 《시간 관념의 기원》(La genèse de l'idée de temps, 1890)에서는 시간 자체가 우주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생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시간은 인간의 상상력, 기억, 의지에 의해 구성된 정신적 산물이라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영향과 평가
귀요는 생전에 비해 사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의 '아노미(anomie, 무규범)' 개념은 동시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차용하여 발전시켰다. 무정부주의자 표트르 크로폿킨은 그의 윤리학 저작에서 귀요의 도덕론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미국 철학자 조시아 로이스는 그를 "최근 프랑스 철학 비평가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 중 한 명으로 언급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프랑스의 니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요 저서로는 《에피쿠로스의 윤리학》(1878), 《현대 영국 윤리학》(1879), 《현대 미학의 문제들》(1884), 《의무와 제재 없는 도덕의 개요》(1884), 《미래의 비종교》(1886), 《시간 관념의 기원》(1890),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예술》(188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