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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고려)

장릉(長陵)은 고려 제17대 국왕 인종(仁宗, 재위 1122~1146)의 능이다.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장릉리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비정된다.

인종은 1146년(인종 24) 2월 정묘일에 보화전(保和殿)에서 승하하였으며, 3월 갑신일에 나성(羅城) 남쪽에 장례를 지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능의 위치는 도성 서쪽인 벽관동(碧串洞)에 있으며,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개풍군 청교면 장릉리 일대로 기록되어 있다.

인종 사후 그의 아들들인 제18대 의종(毅宗), 제19대 명종(明宗), 그리고 손자인 제20대 신종(神宗)이 장릉을 참배한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의종은 1148년(의종 2) 윤8월 27일에, 명종은 1173년(명종 3) 4월 3일과 1186년(명종 16) 8월 23일에, 신종은 1198년(신종 1) 5월 1일에 각각 참배하였다.

장릉은 현재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능의 구조나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인근에 위치한 제16대 예종의 유릉(裕陵)이나 제20대 신종의 양릉(陽陵)과 양식이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며, 봉분의 크기와 석물이 작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장릉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16년 도굴 사건을 통해서였다. 일본 골동품상이 도굴꾼과 결탁하여 장릉 출토품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팔아넘겼으며, 이 때문에 출토품의 진위 논란이 있었다. 출토 유물 중에는 "황통 육년(皇統六年, 1146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인종시책(仁宗諡冊), 청자 참외모양 병(국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 합, 청자 뚜껑 있는 잔, 청자 받침대, 청동도장, 은제 수저 등이 있다. 이 시책 명문의 연대가 인종의 사망 연도인 1146년과 일치함에 따라 해당 유물들은 장릉의 출토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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