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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 바로

장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 1910년 9월 8일~1994년 1월 22일)는 프랑스의 배우, 연출가, 마임 예술가이다. 프랑스 르베지네에서 태어났으며, 샤를 뒬랭(Charles Dullin)의 아틀리에 극장에서 연기를 배우고 에티엔 드크루(Étienne Decroux)에게 마임을 수학하였다. 1931년 벤 존슨의 <볼포네>에서 하인 역으로 무대에 데뷔하였다.

1935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어머니 주변>(As I Lay Dying)을 각색한 마임극을 첫 연출작으로 선보였으며, 이 작품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잔혹극 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부터 1946년까지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여배우 마들렌 르노(Madeleine Renaud)와 결혼하였다. 1946년 두 사람은 '르노-바로 극단'(Compagnie Renaud-Barrault)을 창단하여 파리 마리니 극장(Théâtre Marigny)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é) 감독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에서 19세기 마임 배우 장-가스파르 드뷔로(Jean-Gaspard Deburau) 역을 연기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의 마임 연기는 오늘날까지 연기 교육 자료로 사용된다. 1959년 테아트르 드 프랑스(Théâtre de France, 옛 오데옹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1968년까지 재임하였으나, 1968년 5월 학생 운동 당시 학생들에게 극장을 개방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해임되었다. 이후에도 오르세 극장(Théâtre d'Orsay), 롱-포앙 극장(Théâtre du Rond-Point)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사뮈엘 베케트, 외젠 이오네스코, 장 주네 등 당대 전위극 작가들의 작품을 초연하였으며, 폴 클로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클로델 연출의 대가로 평가받았다. 연극, 마임, 음악, 무용을 통합한 '총체극'(total theatre) 개념을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연극에 관한 성찰>(Réflexions sur le théâtre, 1949), <내일을 위한 기억>(Souvenirs pour demain, 1972) 등이 있다. 1994년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으며, 파시 묘지(Passy Cemetery)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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