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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물랭

장 물랭(Jean Moulin, 1899년 6월 20일~1943년 7월 8일)은 프랑스의 공무원이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저항운동)의 영웅이다. 본명은 장 피에르 물랭(Jean Pierre Moulin)이다.

프랑스 베지에(Béziers)에서 태어났으며, 몽펠리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30년에는 프랑스 최연소 부군수(subprefect)가 되었고, 1937년에는 최연소 도지사(prefect)로 임명되어 아베롱(Aveyron)과 외르-에-루아르(Eure-et-Loir)에서 근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1940년 6월 독일군이 샤르트르(Chartres)에 진주했을 때, 물랭은 세네갈 출신 병사들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독일군의 허위 진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여 체포되었다. 구금 중 자살을 시도하여 목에 상처를 입었고, 이후 그는 이 흉터를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착용한 모습으로 유명해졌다. 같은 해 11월 비시(Vichy) 정권에 의해 해임되었다.

1941년 9월 런던으로 탈출하여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을 만났고, 드골의 명령을 받아 프랑스 내 레지스탕스 조직들을 통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1월 프랑스에 비밀리에 잠입하여 활동명 '렉스(Rex)'와 '막스(Max)'로 불리며 각 저항 단체들을 규합했다. 1943년 1월에는 주요 저항 조직 세 개가 연합한 '통합 저항 운동(MUR, Mouvements Unis de la Résistance)'을 창설했고, 1943년 5월 27일에는 레지스탕스의 통합 정치 기구인 국가 저항 평의회(CNR, Conseil national de la Résistance)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이 되었다.

1943년 6월 21일, 리옹 교외 칼뤼르-에-퀴르(Caluire-et-Cuire)에서 동료 저항 지도자들과 회의를 가지던 중 독일 보안청(SD, Sicherheitsdienst)에 체포되었다. 리옹 주재 게슈타포(Gestapo) 수장 클라우스 바르비(Klaus Barbie)에게 잔혹한 고문을 받았으며, 1943년 7월 8일 메츠(Metz) 역 인근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정확한 사망 경위와 장소에 대해서는 일부 이견이 존재한다.

1964년 12월 19일 그의 유해로 추정되는 유골이 파리의 팡테옹(Panthéon)에 이장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 학교, 대학(리옹 3대학), 박물관(파리의 장 물랭 박물관) 등이 다수 존재하며, 그는 프랑스 저항 운동의 상징이자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스카프와 중절모를 착용한 그의 사진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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