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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드쿠

장 드쿠(Jean Decoux, 1884년 5월 5일 ~ 1963년 10월 21일)는 프랑스의 해군 제독이자 식민지 행정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0년 7월부터 1945년 3월 9일까지 프랑스 비시 정부를 대표하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총독을 지냈다.

초기 생애 및 해군 경력

장 드쿠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01년 약 16세의 나이로 해군사관학교(École navale)에 입학하였으며, 1903년 2급 생도, 1904년 1급 생도로 승진하였다. 이후 1906년 소위, 1913년 중위, 1920년 소령, 1923년 중령, 1929년 대령, 1935년 소장(준장)을 거쳐 1938년 부제독(소장)으로 승진하였고, 툴롱 방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인도차이나 총독 재임

1939년 1월 13일, 드쿠는 알베르 르브륑 대통령에 의해 극동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40년 6월 25일, 조르주 카트루 장군의 후임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 직무를 대행하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 8월 29일 정식 임명되었다.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드쿠도 처음에는 추축국에 맞서 싸우기를 원했으나, 열세한 군사력으로 일본군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필리프 페탱 정권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1940년 8월 초, 일본군은 통킹 지역(오늘날 베트남 북부)을 통한 병력 이동과 공군 기지 건설, 연합군의 중국 보급로 차단 권한을 요구하였다. 드쿠는 비시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1940년 9월 20일 하이퐁 항구를 개방하고 일본군의 지역 주둔권을 인정하는 조약에 서명하였다.

드쿠는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와 베트남인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프랑스인보다 두 배 많은 베트남인을 포함하는 연방협의회를 구성하고, 베트남인을 공무직에 등용하며 프랑스 공무원과 동등한 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43년에는 기존의 연방협의회를 개편하여 인도차이나인 대표가 유럽인 대표보다 많도록 조정하였다.

한편 드쿠는 비시 정부의 반유대주의 법률과 자유 프랑스 및 프리메이슨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이러한 정책이 프랑스 식민 체제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하였다.

일본의 쿠데타와 이후

1945년 3월 9일, 일본군은 프랑스 식민 정부를 직접 장악하는 쿠데타(명호 작전)를 일으켜 드쿠를 축출하고 베트남 제국을 수립하였다. 드쿠는 프랑스로 송환된 후 체포되어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가택 연금 상태에 놓였다. 이후 1949년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이전의 계급과 권리를 회복하였다.

드쿠는 회고록 《À la barre de l'Indochine》(인도차이나의 지휘관으로서)을 저술하였다. 1963년 파리에서 사망하였으며, 안시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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