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골 전투(Battle of Chatkol)는 한국전쟁 말기인 1953년 2월 26일부터 4월 21일까지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백덕리 일대(소위 '철의 삼각지대' 내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유엔군 측에서는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가 주력으로 참전하였고, 중공군(중국 인민지원군)이 공세를 펼쳤다. 이 전투는 '잣골의 55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가 55일 연속으로 야간 공격을 방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잣골(Chatkol)은 철원과 김화 남쪽, 평강 북쪽 사이에 위치한 '철의 삼각지대' 중앙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었다. 좌표는 북위 38° 19′ 39.7″, 동경 127° 24′ 13.0″이며, 철원군 근북면 백덕리 일대에 해당한다. 잣골은 철의 삼각지대를 관통하는 철도에 근접해 있어 유엔군과 중공군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통신 거점으로 간주되었다.
배경
유엔군 사령부는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를 미 제3보병사단 제7연대 우측 전방 지역에 배치하였다. 벨기에 대대는 잣골과 산동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였고, 이 방어선은 백마산맥(White Horse Mountain) 능선을 따라 북쪽에서 동쪽까지 활처럼 휘어진 형태로 형성되어 '부메랑(Boomerang)' 방어선이라 불렸다. 방어선 북쪽에는 앨리스(Alice), 바버라(Barbara), 캐럴(Carol) 세 개의 전초기지가 설치되었으며, 각 기지의 명칭은 해당 지역을 담당한 중대명에서 따왔다.
전투 경과
3월 8~9일: 캐럴 전초기지 탈환
캐럴 전초기지는 방어선 북단 우측의 취약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200m 전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중공군 100여 명이 기습하여 전초기지를 점령하자, 다음 날 오전 6시 45분 벨기에군은 미군의 포병 지원과 연막을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기지를 탈환하였다. 이 전투에서 벨기에군 5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당했으며, 중공군은 약 25명 전사, 40명 부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3월 13일: 앨리스 전초기지 탈환
앨리스 전초기지는 자정 15분에 중공군의 포격과 대규모 보병 공격을 받았다. 철수 과정에서 1명의 병사가 실종되었고, 이후 기지 탈환 시 수색 결과 부상당한 생존자가 아군 진영으로 기어오는 것이 발견되어 헬리콥터로 후송되었다.
4월 7~8일
룩셈부르크 소대의 레이몽 베링거(Raymond Beringer) 상병이 자신의 벙커 지붕으로 .30 구경 기관총을 옮겨 더 넓은 사격 범위를 확보하였다. 전투 후 그의 벙커 200m 이내에서 중공군 병사 20구 이상이 발견되었다. 베링거 상병은 이 공로로 미국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을 수여받았으며, 은성무공훈장(Silver Star)이 추천되었으나 서류가 분실되어 1992년에야 실제 수여되었다.
4월 18~19일
B 중대가 공격을 받았으며, 빌렘 훌레브루크(Willem Hullebroeck) 중사의 기관총 진지가 파괴되었다. 그는 붕괴된 진지를 벗어나 부상당한 동료의 무기를 들어 즉시 전투를 재개하였다.
결과
잣골 전투는 유엔군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55일간의 전투 동안 중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으며, 유엔군의 사상자는 전사 24명, 부상 18명 이상, 실종 2명이었다. 중공군의 피해 규모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전초기지 탈환 과정에서만 상당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