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극(雜劇)은 중국 전통 희곡의 한 형식이다. '잡극'이라는 용어는 당나라 시기 이덕유(李德裕)의 『이문요문집(李文饒文集)』 제12권에 처음 등장하나, 당대의 잡극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였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이후 송잡극(宋雜劇), 원잡극(元雜劇), 온주잡극(溫州雜劇) 등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중에서도 원잡극(元雜劇)은 원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예술로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원잡극은 가무(歌舞), 음곡(音曲), 연기(演技)를 통합한 종합 무대 예술로, 중국식 오페라라고도 불린다. 이는 몽골 왕조의 지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성숙하여 발전하였으며, 희극(戱劇)과 금나라의 잡곡(雜曲)을 계승하여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 시기에는 과거 제도가 폐지되면서 많은 문인들이 생계를 위해 또는 울분을 풀기 위해 희곡 창작에 뛰어들었고, 이로 인해 잡극 작품의 질과 양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원잡극은 대체로 4막(幕)으로 구성되며, 비파(琵琶)를 중심으로 한 여러 악기를 사용한다. 배역은 정말(正末), 정단(正旦)을 비롯하여 충말(沖末), 정(淨), 축(丑) 등으로 구분되며, 주역인 말(末)과 단(旦)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적으로는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구어(口語)를 적극 활용하였다. 원잡극은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에서 유행하였기에 북곡(北曲)이라고도 불린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상기(西廂記)》, 《한궁추(漢宮秋)》, 《오동우(梧桐雨)》 등이 있다.
원나라 중엽 이후 강남 지방에서는 북곡보다 자유롭고 무대 변화가 많으며 화려한 남곡(南曲)이 일어났으며, 남곡의 대표작으로는 《비파기(琵琶記)》가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는 단편극의 형태로도 잡극 창작이 이어졌다.
한국어에서 '잡극'은 또한 '극의 일반적 원칙이나 규정에 맞지 않는 잡스러운 연극'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