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드 벨빌(Jeanne de Belleville, 1300년경~1359년)은 14세기 프랑스-브르타뉴 출신의 귀족 여성으로, 백년 전쟁 시기에 활동한 사략선 선장이었다. '브르타뉴의 암사자(Lioness of Brittany)'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1300년경 프랑스 왕국과 브르타뉴 공국의 접경 지역인 벨빌쉬르비(Belleville-sur-Vie)에서 귀족 모리스 4세 드 몽터귀와 레티스 드 파르트네이의 딸로 태어났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1320년 이복 형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몽터귀와 벨빌의 영주권을 상속받았다.
결혼 1312년 조프루아 8세 드 샤토브리앙과 첫 결혼을 하였고, 1326년 그가 사망한 후 1328년 브르타뉴 공작의 둘째 아들인 기 드 팡티에브르와 재혼했으나,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 1330년 혼인이 무효화되었다. 1330년 올리비에 4세 드 클리송과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이 사이에서 올리비에 5세 드 클리송(훗날 프랑스 무관장)을 포함한 다섯 자녀를 두었다.
남편의 처형과 복수 1342년 브르타뉴 계승 전쟁 중 올리비에 4세가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낮은 몸값으로 석방되자, 프랑스 왕 필리프 6세와 샤를 드 블루아는 그를 반역자로 의심하였다. 1343년 1월, 올리비에 4세는 토너먼트에 초대받았다가 체포되어 파리로 이송되었고, 같은 해 8월 2일 레 알르(Les Halles)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머리는 낭트의 소베투 성문에 효수되었다.
잔 드 벨빌은 남편을 구명하기 위해 왕의 하사관에게 뇌물을 주려 한 혐의로 기소되어 1343년 8월 26일 추방 및 재산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그녀는 두 아들을 데리고 낭트 성문에 전시된 남편의 머리를 보여주며 복수를 맹세했다.
해적 활동 그녀는 영지를 매각한 자금으로 약 400명의 병사를 모집하고 상선을 전선으로 개조하였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 배들은 검은색으로 칠해졌으며, 기함의 이름은 '나의 복수(My Revenge)'였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대서양과 영국 해협에서 프랑스 상선들을 습격하여 선원들을 학살하였고, 의도적으로 한 명만 살려 프랑스 왕실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브르타뉴의 암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프랑스 함대의 진압으로 기함이 침몰한 후, 그녀는 두 아들과 함께 쪽배로 탈출하여 닷새간 표류하였고, 이 과정에서 작은아들 기욤이 사망하였다. 이후 몽포르파 지지자들에게 구조되었다.
말년 1349년경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기사였던 월터 벤틀리(Walter Bentley)와 네 번째 결혼을 하였다. 이후 엔봉(Hennebont)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359년 12월 사망하였다. 사인에 대해서는 중세 흑사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기록이 존재하나,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역사적 기록 잔 드 벨빌의 존재는 교황청 혼인 무효 기록, 1343년 프랑스 법원의 추방 판결문, 잉글랜드 왕실의 수입 지급 기록, 1347년 프랑스-잉글랜드 휴전 협정문 등 여러 당대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15세기 사본 《프랑크 왕 연대기(Chronographia Regum Francorum)》와 장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의 《연대기》에도 그녀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