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알텐부르크의 엘리자베트(독일어: Elisabeth Auguste Marie Agnes von Sachsen-Altenburg, 1865년 1월 25일 ~ 1927년 3월 24일)는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의 공주이자 러시아의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의 아내이다. 결혼 후에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지 않고 루터교 신앙을 유지했으며, 러시아식 이름인 옐리자베타 마브리키예브나(러시아어: Елизавета Маврикиевна)로 불렸다.
초기 생애
엘리자베트는 1865년 1월 25일 독일 알텐부르크에서 작센알텐부르크 공 에른스트 1세와 안할트데사우의 아그네스 공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님의 넷째 딸이자 막내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지적이고 자비로운 성품을 지녔으며,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혼과 러시아 생활
1884년 4월 27일, 엘리자베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의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과 결혼했다. 콘스탄틴 대공은 니콜라이 1세 황제의 손자이자 시인이자 학자로 명망 높은 인물이었다. 엘리자베트와 콘스탄틴 대공은 서로에게 깊은 존경과 애정을 가졌으며, 지적인 교류를 통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했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지 않고 루터교 신앙을 유지했으며, 이는 당시 러시아 황실의 관례에 비추어볼 때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황실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8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엘리자베트는 러시아 황실의 일원으로서 자선 활동과 사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특히 예술과 교육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다양한 자선 단체를 후원했다.
자녀
엘리자베트와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 사이에는 8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 이반 콘스탄티노비치 (1886년 7월 5일 ~ 1918년 7월 18일): 알라 파블로브나 공주와 결혼. 러시아 혁명 중 볼셰비키에 의해 알라파옙스크에서 살해됨.
- 가브릴 콘스탄티노비치 (1887년 7월 15일 ~ 1955년 2월 28일): 마리아 넬리도바와 결혼. 러시아 혁명에서 살아남아 망명 후 사망.
- 타티야나 콘스탄티노브나 (1890년 1월 23일 ~ 1979년 8월 28일): 조지 콘스탄티노비치 바그라티온-무흐란스키와 결혼 후 수녀가 됨.
-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1891년 1월 1일 ~ 1918년 7월 18일): 러시아 혁명 중 볼셰비키에 의해 알라파옙스크에서 살해됨.
- 올레그 콘스탄티노비치 (1892년 11월 27일 ~ 1914년 9월 29일):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사.
- 이고르 콘스탄티노비치 (1894년 6월 10일 ~ 1918년 7월 18일): 러시아 혁명 중 볼셰비키에 의해 알라파옙스크에서 살해됨.
-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1903년 5월 6일 ~ 1938년 11월 7일): 망명 후 사망.
-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1906년 4월 24일 ~ 2001년 1월 11일): 러시아 황족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으며, 망명 후 사망.
러시아 혁명과 망명
엘리자베트의 삶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큰 비극을 겪게 된다. 1914년에는 아들 올레그 콘스탄티노비치가 전사했고, 1915년에는 남편 콘스탄틴 대공이 사망했다. 이어서 1918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그녀의 세 아들(이반, 콘스탄틴, 이고르)이 볼셰비키에 의해 알라파옙스크에서 처형당하는 참혹한 비극을 겪었다.
그녀는 나머지 자녀들과 함께 러시아를 탈출하여 스웨덴으로 망명했고, 이후 벨기에와 독일 등지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그녀는 남은 가족들을 돌보고 자선 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1927년 3월 24일, 그녀는 고향인 독일 알텐부르크에서 6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알텐부르크 공작묘에 안장되었다.
칭호와 호칭
- (출생 시) 작센알텐부르크 공녀 엘리자베트 전하
- (결혼 후) 러시아의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비 전하,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마브리키예브나 대공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