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뒤트롱(Jacques Dutronc, 1943년 4월 28일 ~)은 프랑스의 가수,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기타 연주자이자 영화배우이다. 파리 9구 뤼 드 프로방스에서 출생했으며, 프랑스의 공기업인 석탄배급청에서 관리자로 일한 피에르와 마들렌 뒤트롱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 경력
뒤트롱은 1960년 학교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첫 밴드를 결성했다. 이 밴드는 1961년 디스크 레이블 '디스크 보그(Vogue)'의 예술감독인 자크 볼프존의 눈에 들어 '엘 토로 에 레 시클론(El Toro et les Cyclones)'이라는 이름으로 계약되었다. 그러나 군 복무로 인해 밴드는 해체되었다.
제대 후인 1963년, 뒤트롱은 에디 미첼의 백킹 밴드에서 기타를 잠시 연주했으며, 이후 보그에서 볼프존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프랑수아즈 아르디 등 여러 아티스트를 위해 곡을 작곡했다. 작가 자크 랑즈망과 협업하여 만든 곡들 중 "에트 무아, 에트 무아, 에트 무아(Et moi, et moi, et moi)"가 1966년 프랑스 차트 2위에 오르며 솔로 가수로서의 성공을 시작했다.
이후 뒤트롱은 "레 플레이 보이(Les play boys)", "자임 레 피유(J'aime les filles)", "일 에 생크 외르, 파리 사베유(Il est cinq heures, Paris s'éveille)" 등의 히트곡을 내며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악가 중 한 명이 되었다. 특히 1968년 발표된 "일 에 생크 외르, 파리 사베유"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1991년 프랑스 음악 평론가들의 설문에서 역대 최고의 프랑스어 싱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프랑스 팝, 프랑스 록, 사이키델릭 록, 개러지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1960년대 프랑스의 예예(yé-yé) 음악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뒤트롱은 초기 대부분의 곡을 자크 랑즈망과 공동 작곡했으며, 이후 세르주 갱스부르와도 협업했다. 1980년 발매된 앨범 《Guerre et pets》는 갱스부르와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리드 싱글 "L'hymne à l'amour"가 인종 비방적 가사로 인해 방송 제한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경력
1973년 《앙투안 에 세바스티엥(Antoine et Sébastien)》으로 배우 데뷔를 한 뒤, 뒤트롱은 장뤼크 고다르, 앙제이 줄라프스키, 클로드 를루슈, 모리스 피알라 등 저명한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영화계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1991년 모리스 피알라 감독의 전기 영화 《반 고흐》에서 빈센트 반 고흐 역을 맡아 1992년 프랑스 최고 영화상인 세자르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한 1977년에는 클로드 소테 감독의 《마도(Mado)》로 세자르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플라스 방돔(Place Vendôme)》으로 다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5년에는 세자르상 공로상(명예 세자르)을 수상했다.
한편 스티븐 스필버그가 《레이더스 오브 더 로스트 아크》의 르네 벨로크 역을 그를 염두에 두고 썼으나, 영어 실력 부족으로 캐스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 생활
뒤트롱은 1967년 레이블 동료였던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와 관계를 시작했으며, 1973년 아들 토마스 뒤트롱이 태어났다. 토마스는 성장하여 재즈와 팝 음악가로 성공했다. 뒤트롱과 아르디는 1981년 결혼했으나 1988년 별거했고, 이혼하지 않은 채 아르디가 2024년 사망할 때까지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현재 뒤트롱은 코르시카 몬티첼로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대표 음반
주요 정규 앨범으로는 《Jacques Dutronc》(1966), 《L'opportuniste》(1968), 《Le responsable》(1969), 《Guerre et pets》(1980), 《Brèves rencontres》(1995), 《Madame l'existence》(2003) 등이 있다. 2022년에는 아들 토마스와 협업한 앨범 《Dutronc and Dutronc》을 발매했다.
평가와 영향
《록 앤드 폴》 1979년 사설에 따르면, 뒤트롱은 "1960년대와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1960년대를 논할 수 없는 가수"로 평가된다. 그의 곡들은 막시음 셰디드, 바네사 파라디, 뭉고 제리, 에티엔 다호 등 여러 아티스트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으며, 콘샵의 "Brimful of Asha" 가사에도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