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위(子弟衛)는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이 1372년(공민왕 21년) 궁중에 설치한 관서이다. 한자 뜻은 '자제(子弟, 아들과 아우, 즉 젊은 자제)'와 '위(衛, 지키다)'로 구성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역사 용어이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 등 공신력 있는 출처에서 독립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치 목적은 왕권 강화, 신변 호위, 인재 양성에 있었다. 공신과 고위 관직자의 자제 가운데 나이가 젊고 용모가 빼어난 청년을 선발하여 배속하였으며, 대언(代言) 김흥경(金興慶)이 총관하였다. 자제위에 소속된 인물로는 권진(權瑨), 한안(韓安), 홍관(洪寬), 노선(盧瑄), 홍륜(洪倫), 최만생(崔萬生) 등이 확인된다.
『고려사』 등의 기록에 따르면,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사후 자제위 소속 미소년들과 동성 관계를 맺고, 이들로 하여금 후궁들과 관계하게 하여 후사를 얻고자 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학계에서는 이러한 서술이 조선 초 사가(史家)들에 의해 조선왕조 개창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374년(공민왕 23년), 자제위 소속 홍륜이 공민왕의 후궁 익비(益妃)와의 간통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최만생 등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공민왕을 암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공민왕이 시해된 후,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최만생 등을 처형하고 자제위를 폐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