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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피얀성

자이피얀성(界藩城, 界凡城, 者片城, 만주어: ᠵᠠᡳᡶᡳᠶᠠᠨ ᡥᠣᡨᠣᠨ jaifiyan hoton)은 17세기 초 후금(後金)의 행도(行都)로 사용된 산성(山城)이다. 현재 중국 요녕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중심지 동쪽, 혼하(渾河) 중상류 대화방수고(大伙房水庫) 동남쪽 철배산(鐵背山)에 위치한다.

개요

자이피얀성은 산세를 이용해 축조된 산성으로, 둘레는 4,612.5m에 달한다. 성의 북쪽은 가파른 절벽이고 남쪽에 성이 있으며, 성벽은 지표로부터 40m 이상 떨어져 있고 가장 높은 곳은 100m에 이른다. 서쪽으로는 혼하와 소자하(蘇子河)의 합류점이 있어 지리적으로 험요한 방어에 유리한 지점이었다. 축성 당시 산등성이의 지세에 따라 서위성(西衛城), 내성(內城), 동위성(東衛城)으로 구분하여 조성되었다.

이 지역은 누르하치(努爾哈赤)가 여진(女眞) 각 부락을 통일하기 전에는 건주여진(建州女眞) 저천부(哲陳部)의 자이피얀채(界藩寨)였다.

역사적 배경

1619년 2월, 후금은 약 1만 5천 명을 동원하여 성을 축조하였다. 축성 기간 동안 유명한 사르후 전투(薩爾滸戰鬪)가 발생하였다. 축성에 동원된 군민은 수성에 참여하였고, 다이샨(代善)이 부대를 이끌고 도착하여 사르후산(薩爾滸山) 위의 명군 대영을 공격·함락한 데 이어, 축성 인부들이 산 위에서 아래로 돌격하여 협공을 가하였다. 약 5일간의 전투 끝에 두송(杜松)이 이끄는 명의 대군을 전멸시키고 승리하였다.

전투 종료 후 축성이 완성되자 누르하치는 자이피얀성에 주둔하였고, 이후 요북(遼北) 지역으로 출정하여 6월 개원(開原), 7월 철령(鐵嶺), 8월 여허(葉赫)를 공격하는 등 강역을 확장하였다. 누르하치는 자이피얀성에 약 1년 4개월간 거주한 후 인근의 사르후성(薩爾滸城)으로 천도하였다.

현재 유적 상태

오늘날 성 북쪽과 남쪽에는 성문 터가 남아 있으며, 내성에는 누르하치의 행궁으로 추정되는 대형 집터 2곳이 있다. 그 외에 반혈식(半穴式) 집터도 여러 곳이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철갑편, 철탄환, 청화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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