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권운동(自由民權運動, 일본어: 自由民権運動 지유민켄운도[*])은 메이지 시대(1868~1912)의 일본에서 전개된 정치·사회 운동으로, 헌법 제정과 국회 개설을 통해 민주주의와 참정권을 요구한 일본 최초의 전국적 민권 운동이다.
배경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에도 막부가 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환하고 메이지 유신이 진행되면서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서양 사상을 수용한 지식인들의 민권 요구와 사회적 격변 속에서 위기에 처한 하층민의 요구가 결합하여 운동이 촉발되었다.
경과
1874년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 등이 「민선의원 설립건백서(民選議院設立建白書)」를 제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운동의 주요 세력은 옛 사족(士族)을 비롯한 지방 부농층이었으며, 후반에는 빈농층도 결합하였다. 이들은 근대적 헌법 제정과 행정·입법·사법의 삼권 분립, 지조 경감, 불평등 조약 개정, 언론 및 집회의 자유 등을 요구하였다.
운동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제1단계(1874~1877)는 건백서 제출부터 세이난 전쟁까지, 제2단계(1877~1884~1885)는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 제3단계는 조약 개정 반대 운동과 대동단결운동(大同団結運動)을 중심으로 한 시기이다.
메이지 정부는 초기에 민권파를 탄압하였으나, 일부 정부 인사들은 민권 운동의 요구를 수용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1882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유럽으로 헌법 조사에 파견하였고, 1889년 일본 제국 헌법(메이지 헌법)이 공포되었으며, 1890년 제국의회가 개설되었다.
결과
1889년 공포된 메이지 헌법은 천황이 제정하는 흠정 헌법(欽定憲法)으로, 천황을 신성불가침의 존재이자 유일한 통치권자로 규정하였다. 주권은 천황에게 있었고, 국민은 신민(臣民)으로서 천황의 통치를 보조하는 지위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자유민권운동이 기대한 근대적 입헌군주제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였으며, 천황에게 집중된 권력은 이후 군부의 세력 확장과 군국주의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 영향
자유민권운동 시기에는 민권 사상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설을 노래로 변형한 엔카(演説歌, 엔제츠카)가 등장하였으며, 이는 이후 일본 대중가요 장르인 엔카(演歌)의 기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