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자오쯔양

자오쯔양(중국어 간체자: 赵紫阳, 정체자: 趙紫陽, 병음: Zhào Zǐyáng, 1919년 10월 17일 ~ 2005년 1월 17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중국공산당의 핵심 지도자였다. 그는 중국의 국무원 총리(1980년~1987년)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1987년~1989년)를 역임하며 1980년대 중국의 경제 개혁 및 개방 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생애와 정치 이력 허난성 화현(滑縣) 출생으로, 1938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중일 전쟁과 국공 내전 기간 중 지역 당 조직에서 활동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광둥성 등 남부 지역의 행정 및 당직을 맡았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홍위병에 의해 숙청되어 실각하기도 하였으나, 1970년대 초반 복권되었다.

경제 개혁 1970년대 후반 쓰촨성 당 서기로 재임하며 농업 분야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생산책임제를 도입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중앙 정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덩샤오핑의 신임을 얻어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시장 경제 원리를 일부 도입하고 정경분리(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추진하는 등 중국의 현대화에 기여하였다.

1989년 천안문 사건과 실각 1987년 후야오방의 사망 이후 중국공산당 총서기직을 승계하였다.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자, 그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리펑을 비롯한 당내 보수파 및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과 대립하였다. 무력 진압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던 그는 결국 계엄령 선포 직전인 1989년 5월 19일 광장을 방문해 학생들에게 눈물로 시위 중단을 호소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었다.

가택 연금과 사망 실각 이후 당적은 유지하였으나 사망할 때까지 약 16년 동안 베이징의 자택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냈다. 연금 기간 중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당시 상황을 기록한 회고록을 비밀리에 작성하였으며, 이는 그가 사망한 뒤인 2009년 《국가의 죄인》(영어판 제목: Prisoner of the Stat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2005년 1월 17일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였다.

평가 중국 현대사에서 경제 개혁의 설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나,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 서술에서는 1989년 사건과 관련하여 그에 대한 언급이 극히 제한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반면, 중국 밖의 학계와 민주화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개혁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지도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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