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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

자연법(自然法, 라틴어: ius naturale, lex naturalis, 영어: natural law, 독일어: Naturrecht)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제정한 실정법(實定法)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자연 자체에 내재하거나 인간 이성을 통하여 발견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법칙 또는 규범을 의미한다.

개념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연법을 세 가지 의미로 정의한다. 첫째, 자연계의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원인과 결과의 필연적 법칙(자연법칙과 동의어). 둘째, 우주 그대로의 진여(眞如)한 제법(諸法). 셋째, 인간 이성을 통하여 발견한 자연적 정의 또는 자연적 질서를 사회 질서의 근본 원리로 생각하는 법으로, 고전적 개념에서는 신법(神法) 또는 영구법(永久法)의 한 부분이었으며 근세의 개념에서는 인간 이성의 우위에 입각하여 합리주의, 개인주의, 급진주의의 특징을 지닌다.

법철학과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자연법은 자연히 존재하여 언제 어디서나 유효한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법칙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법은 정치적 공동체나 국가 등에서 만들어진 실정법과 대비되거나 이를 비판하는 기준으로 기능한다. 동시에 자연법은 실정법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지며, 실정법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법의 정당성 상태를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자연법의 기본 원리

자연법의 제1원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원리로부터 "각인(各人)에게 그의 것을 주어라", "타인에게 부정을 행하지 말라"는 규칙이 도출되며, 다시 "계약을 지키라", "살인하지 말라" 등의 구체적 규칙이 추론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상세한 규정, 형벌의 정도, 계약의 형식과 효력 등은 사회 사정을 고려하여 입법되는 실정법에 위임된다.

역사적 전개

자연법 사상은 서양 사상사의 주요한 흐름으로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록상 최초의 자연법 사상은 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나타난다. 소피스트들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법의 이데아로서의 자연적 정의가 이론화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정의'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보았다. 스토아 학파는 인간 정신 속에 내재한 '올바른 이성' 또는 로고스로서의 자연법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로마의 키케로는 "진정한 법은 모든 인간 안에 편재한 영원불멸의 올바른 이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 신학과 그리스 철학이 융합되어 자연법이 신학 체계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신의 이성인 영구법(永久法)이 인간 본성에 발현된 것이 자연법이라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자연법에 관한 가장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자연법을 '영원한 법이 이성적 피조물에 관여한 것'으로 정의하고, 신적 이성의 영원한 법이 계시나 이성 작용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제1원리로부터 이성의 추론을 통해 몇 가지 제2차적 자연법을 도출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실정법과의 관계를 탄력적으로 설명한 점에 특징이 있다.

근세(근대)에 이르러 자연법 사상은 중요한 전환을 맞이한다. 휘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자연법이 효력을 가진다고 주장하여 자연법의 세속화를 이끌었다. 이후 사무엘 폰 푸펜도르프(Samuel von Pufendorf),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존 로크(John Locke),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등에 의해 자연법은 사회계약론과 결합되어 발전하였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파악하고, 자연권(jus naturale)을 "인간이 자기 본성을 지키기 위해 각자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로 정의하였다. 이에 반해 로크는 자연 상태를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이 이미 자연법을 준수하는 사회 상태로 보다 낙관적으로 묘사하였다. 근세 자연법은 개인주의와 결합되어 자연권(自然權)으로서의 개인의 가치를 주장하였고, 이는 역사 변혁의 큰 동력이 되었다.

독일 고전철학에서 칸트, 피히테, 헤겔은 각각 독자적인 자연법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칸트는 실천이성 또는 도덕이성이 순수형식적 골격을 갖는 타당한 권리체계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19세기에는 법실증주의(Rechtspositivismus)가 대두하여 자연법과 같은 관념을 허구나 이데올로기로 배척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양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경험을 계기로 자연법 사상이 재부흥(Renaissance des Naturrechts)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독일의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나치즘 경험 이후 자연법론으로 기울어졌으며, 신토마스주의(Neo-Thomismus)를 비롯한 다양한 신자연법론이 전개되었다.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자연법과 실정법은 규범 체계에서 상하 관계에 있다고 이해된다. 상위 규범으로서 자연법은 실정법을 정당화하거나, 반대로 실정법을 무효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자연법의 실정법 정당화 기능과 함께 비판적·보충적 기능, 보수적 기능과 혁신적 기능이 발생한다. 실정법 질서의 혼란이나 동요기에는 상위 규범인 자연법에의 호소가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주요 국가에서의 전개

영국에서는 13세기 법률가 헨리 드 브랙턴이 "국왕도 하나님과 기본법 아래에 있다"고 선언하였고, 17세기 에드워드 코크 경(Edward Coke)은 자연법이 영국법의 일부이며 세속적 법에 우선한다고 판시하였다.

미국에서는 독립선언이 자연법과 자연권 사상에 기초하여 작성되었으며, 미국 헌법의 적법절차(Due Process) 조항은 자연법적 해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자연법에 근거하여 법률을 무효화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를 거쳐 실체적 적법절차 원리를 발전시켜 왔다.

독일 연방헌법법원은 헌법에 선행하고 헌법제정권자도 구속하는 초실정법적 규범의 존재를 시인하고, 실정법률을 그에 비추어 심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1항은 미국의 적법절차 조항을 도입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관련 판례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적법절차를 형사절차에 한정하여 절차적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자연법의 보편성 논의

자연법은 불변의 인간 본성에 기초를 둔 도덕적 법원리로서 보편타당성과 보편윤리성을 그 특색으로 한다. "살인하여서는 안 된다"나 "계약은 준수하여야 한다"와 같은 자연법의 규칙은 이론적으로는 보편성을 지니나, 실제로는 모든 시대와 사회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는 인식의 불완전성이나 사회적 조건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독일 법철학자 에릭 볼프(Erik Wolf)는 '자연'(Natur)과 '법'(Recht)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고려할 때 수많은 자연법 개념이 성립 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개념은 다의적이나 기능은 일의적인데, 그것은 실정법에 대하여 항상 비판적으로 그 불완전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순수법학의 한스 켈젠(Hans Kelsen)은 자연법이 역사적으로 실정법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더 많이 해왔다고 주장하였다.

현대적 의의

20세기 이후 국제정치 차원에서의 인권 선언들은 자연법 이론의 직접적 산물이라기보다 일상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경험적 노력의 결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법 사상은 현대 헌법과 인권 담론의 기저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법철학과 정치철학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핵심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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