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역노비(立役奴婢)는 조선시대 공노비(公奴婢)의 한 유형으로, 궁중·중앙관청·지방관아 등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직접 노역(勞役)을 제공한 노비를 말한다. 이들은 국가 소유의 노비인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外居奴婢, 소속 관청이나 주인과 떨어져 거주하는 노비)에 해당하며, 신역(身役) 부담 방식에 따라 입역노비·봉족노비(奉足奴婢)·납공노비(納貢奴婢)로 구분되는 외거노비 중 하나였다.
입역 방식 및 근무 입역노비는 주로 지방에 거주하다가 관청에 필요한 인력으로 선상(選上)되어 서울로 올라와 일을 하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서울 거주 노비는 2번(番)으로 나누어 교대로 입역하였고, 외방(지방) 거주 노비는 7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선상하였으며, 1회 근무 기간은 6개월이었다. 역(役)의 의무는 15세부터 60세까지 부과되었다.
직무 구분 입역노비는 그 임무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 차비노(差備奴): 관청의 잡무(庫直·房直·城上 등)와 궐내의 각종 잡역(闕內差備)을 담당하였다. 궐내차비는 飯監·別監 등 16가지 직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서울 거주 노비가 주로 충당되었다.
- 근수노(跟隨奴): 종친이나 각사 소속 관원에게 배정되어 출입 시 시종하고 지방 출장 시 수행하는 등 관원 개인의 수발을 담당하였다. 관원의 관품에 따라 정액이 차등 지급되었다.
운영상의 문제와 변천 입역노비 제도는 본질적으로 무상 강제 노동 징발이었기 때문에 여러 모순을 안고 있었다. 특히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외방 거주 노비가 선상되면 6개월간 농사가 중단되어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입역노비들은 관리에게 뇌물을 주거나, 서울 거주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대신 역을 서게 하는 대립(代立) 현상이 널리 퍼졌다. 정부는 대립을 금지했다가 다시 공인하고 대립가(代立價)를 1개월에 면포 2필로 규정하는 등 여러 차례 정책을 변경하였으나, 입역노비의 도망과 피역(避役)은 계속되었다.
그 결과 16세기에는 입역노비가 크게 줄어들었고, 18세기 초엽에 이르러 입역노비 제도는 폐지되었다. 이후 입역노비가 수행하던 역할은 양인(良人)의 고용 노동으로 대체되었다.
어원 '입역(立役)'은 '역(役, 노역)에 선다(立)'는 의미로, 직접 노역 현장에 나가 일을 한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에 '노비(奴婢)'가 결합된 용어이다.
입역노비는 조선시대 신분제와 노비제도의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역사 개념으로, 한국사 학계에서 널리 연구된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