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전투는 1592년(선조 25년) 4월 28일 임진왜란 초기에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일대와 개풍군 사이의 임진강에서 조선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일본군이 조선군의 임진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한성(현 서울)으로 진격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결정적인 전투 중 하나이다.
배경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일본군은 부산진, 동래성, 상주, 충주 탄금대 등지에서 연이어 조선군을 격파하며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 주력 부대가 궤멸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조는 한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이에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한성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임진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고, 도원수 김명원에게 방어 임무를 맡겼다.
교전국 및 지휘관
- 조선군: 도원수 김명원, 부원수 이일, 방어사 신각 등. (병력 약 10,000명 이상으로 추정)
- 일본군: 제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 제2군 사령관 카토 기요마사 등 (선봉부대 약 18,000명 추정)
전개 일본군 선봉대가 임진강에 도착하여 강 건너편의 조선군과 대치했다. 조선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방어선을 구축하고, 강 주변의 배를 모두 치워 일본군의 도하를 저지하려 했다. 일본군은 처음에는 일부 병력을 이용해 도하를 시도하는 척하며 조선군을 유인했다.
이때 조선군의 부원수 이일은 일본군이 도하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오판하여 강을 건너 추격하려 했으나, 도원수 김명원이 이를 저지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밤을 틈타 몰래 강을 건너 조선군 진영 후방에 잠입하거나, 얕은 여울목을 이용해 비밀리에 도하를 감행했다. 4월 28일 이른 아침, 일본군이 전면적으로 강을 건너 공격하자 조선군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지휘 체계의 혼란 속에 붕괴되었다. 김명원, 이일 등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수습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한편, 방어사 신각은 별도의 부대를 이끌고 인근 해유령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여 전과를 올렸으나, 그의 전공이 도원수 김명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오히려 임진강 전투의 패배 소식만 전해진 상황에서 조선 조정은 신각이 도주한 것으로 오인하여 그를 참수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과 및 영향 조선군은 임진강 전투에서 대패하여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한성으로 진격하는 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게 되었고, 전투가 벌어진 지 불과 4일 후인 5월 2일 한성을 점령했다. 선조는 이미 한성을 떠나 의주로 피난 중이었다.
임진강 전투의 패배는 조선이 임진왜란 초기의 방어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었으며, 일본군이 조선의 수도를 점령하고 내륙 깊숙이 진격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조선의 초기 임진왜란 전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전투가 되었다. 조선군의 무능한 지휘와 전술적 실패, 그리고 일본군의 기만 전술에 대한 오판이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