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충(任彦忠, 생몰년 미상)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이다. 원래 한족(漢族) 출신이었으며, 역관(譯官)으로 활동하던 중 이성계(李成桂)와 가까워져 그의 막하에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애와 관직
임언충에 관한 구체적인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시대 기록에서 그는 호군(護軍)의 직책을 맡아 북원(北元)에서 사신이 왔을 때 이를 위로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요동(遼東)으로 보내져 명나라 총병(摠兵) 반경(潘敬) 및 섭왕(葉旺)과 우호 관계를 맺으려는 외교 시도에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려 말기에는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를 역임하였다. 1392년 7월 17일 조선 건국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9월 27일 태조로부터 개국 3등공신(開國三等功臣)에 녹훈되었다. 이때 동시에 추록된 인물로는 조견(趙狷), 한상경(韓尙敬), 황거정(黃居正), 장사정(張思靖), 한충(韓忠), 민여익(閔汝翼) 등이 있다.
가족 및 후일담
임언충의 아들로는 임군례(任君禮)가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1421년) 2월의 기록에 따르면, 임군례는 부친이 개국 공신이었던 덕분에 충의위(忠義衛)에 소속되었으나, 사람됨이 욕심 많고 야비하며 역관으로서 여러 차례 명나라에 사신을 따라가 큰 부자가 되었고 기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한다. 임군례는 이후 대역죄로 논단되어 참형에 처해졌고 가산은 적몰되었으며, 이 사건에서 임언충의 한족 출신 배경과 역관으로서의 행적이 함께 언급되었다.
평가와 한계
임언충에 대한 정보는 주로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등 공식 사료에 산재해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개인에 관한 상세한 전기적 정보(가문 배경, 구체적인 활동 연대, 생몰 연대)는 사료상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으며, 본관이 평택(平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확정적인 근거는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그의 생애 전체를 재구성하기에는 백과사전 정보가 일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