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동(林仙東, 1973년 8월 4일~ )은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다.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휘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하였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우투우타의 투수였으며, KBO 리그에서 LG 트윈스(1997~1998)와 현대 유니콘스(1999~2007)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현재는 부천 진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신일고의 조성민, 경기고의 손경수와 함께 '서울 트로이카'로 불리며 고교 야구 최고의 투수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제2의 선동열'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1991년 말 신인 지명에서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 팀에 바로 입단하지 않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대학 시절에는 박찬호, 조성민 등과 함께 '황금의 92학번' 세대로 불리며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였다. 1993년 버펄로 유니버시아드와 1995년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스카우트 파동과 법정 분쟁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임선동은 일본 프로 야구의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입단 계약을 추진하였으나, 1차 지명권을 보유한 LG 트윈스와 KBO가 이를 저지하였다. 또한 한국 실업 야구팀인 현대 피닉스와도 계약 문제를 빚으면서 삼중 계약 파문이 일어났다. 일본 야구 기구(JBO)가 임선동의 진출을 불허하자, 임선동은 LG 트윈스를 상대로 '지명권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이후 조정을 통해 1997년 LG 트윈스에 입단하고 2년 후 원하는 구단으로 트레이드되는 조건으로 합의되었다. 이 소송은 KBO의 드래프트 제도와 FA 제도 변화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프로 선수 경력
1997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첫 해 11승 7패,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1998년에는 1승 6패, 평균자책점 6.94로 부진하였다. 1999년 1월 현대 유니콘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첫 해에는 부진했으나, 2000년 김시진 투수코치의 지도 아래 잠재력이 폭발하여 18승 4패, 평균자책점 3.36, 174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왕(정민태, 김수경과 공동)과 탈삼진왕을 동시에 석권하였다. 같은 해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을 수상하였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00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여 팀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2001년 14승을 기록하였으나, 이후 허리 부상과 훈련 부족 등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여 2003년 이후로는 승리를 추가하지 못하였다. 2007년 시즌 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되면서 은퇴하였다. KBO 통산 10시즌 동안 130경기에 출전하여 52승 36패, 평균자책점 4.50, 436탈삼진을 기록하였다.
은퇴 이후
은퇴 후 덕수중학교 투수 코치를 거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모교인 연세대학교 야구부 투수 코치로 활동하였다. 2020년부터는 부천 진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