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애(林明愛, 1886년 3월 25일 ~ 1938년 8월 28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본적은 경기도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이며, 남편은 염규호(廉圭浩)로, 부부가 함께 구세군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임명애는 교하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파주 지역 최초의 만세시위를 촉발하였다. 이에 학생 100여 명이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이후 같은 해 3월 25일 임명애는 자신의 집에서 남편 염규호, 김수덕, 김선명, 김창실 등과 만세시위를 모의하고, 등사기로 격문 60여 매를 인쇄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3월 27일에는 교하리에서 7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시위대는 와석면사무소를 파손하고 교하헌병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주재소에 도착한 시위대를 향해 일제 헌병이 발포하여 시위대 중 한 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임명애는 이 과정에서 시위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임신한 상태로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출산이 임박하여 같은 해 10월 가출옥하여 출산하였고, 11월에는 아기와 함께 다시 수감되었다. 이때 서대문형무소 8호실의 동료 수감자들과 유관순이 그녀의 아이를 정성껏 돌보아 준 것으로 전해진다. 1920년 9월 25일 만기 출옥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파주 지역에는 그녀의 삶을 기리는 역사 탐방로인 '파주 임명애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2019년 영화 《1919 유관순》에서 그녀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주요 정보의 출처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위키백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