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任東爀, 일본식 이름: 豊原東爀 / 도요하라 도카쿠, 1912년 9월 25일 ~ ?)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작곡가이다. 본관은 풍천이며, 본적은 경성부 용강정(1939년 당시 주소 기준)이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요 음악학교(東洋音樂學校)로 유학하였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3년 연속으로 도쿄 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이 주최한 콩쿠르 작곡 부문에 입선하였으며,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이 부문에서 입선한 인물이다. 1939년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의료원) 음악부 강사를 지냈고, 1943년 6월부터 경성방송관현악단에서 지휘 및 업무를 담당하며 음악 활동을 펼쳤다.
1941년 1월 조선음악협회 평의원으로 선임된 이후 일제의 식민 통치와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1943년 8월 라디오로 방송된 군국가요 《용사가 되는 날(勇士になる日)》을 작곡했고, 《우리들은 병사로 부르심을 받았다(我等は兵に召されたり)》, 《군국의 어머니(軍國の母)》 등 각종 군국가요를 편곡했다. 그 밖에도 《애국일(愛國日) 노래》(1941년), 《반도 학병의 노래(半島學兵の歌)》(1944년), 《2계급 진급 4용사의 노래》(1944년) 등 학병 지원을 선동하고 지원병의 무공을 찬양하는 노래와, 《다케야마 대위를 따라라》(1943년), 《야생초 꽃》(1943년), 《얼지 말아라》(1944년), 《나라에 나무를》(1944년)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협력할 것을 내용으로 한 노래를 작곡하였다.
1943년 10월 잡지 《신시대》에 발표한 음악 평론 〈시국과 음악〉에서 전쟁 중인 현실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할 것을 주장했으며, 같은 해 12월 같은 잡지에 발표한 〈음악의 일년〉에서는 음악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으로 정의하기도 하였다. 1944년 9월에는 항공기 헌납 음악회에서 조선교향악단을 지휘하였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및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나,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사망 연도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