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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구 풍씨

임구 풍씨(臨朐 馮氏)는 중국 산둥성 웨이팡시 린추현(임구현)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한국의 풍씨는 임구(臨朐)가 단본이다.

기원

풍씨는 중국의 상당(上黨, 지금의 산서성 지역)에서 계출된 성씨로 전해진다. 주나라 문왕의 열다섯째 아들 필고(畢高)의 후손인 필만(畢萬)이 진나라에서 벼슬을 지내고 위나라에 봉해져 식읍으로 받은 풍성(馮城)이라는 지명에서 성을 취하였다고 한다. 《백가성씨첩》에는 식읍을 풍(馮+⻏)에 봉하였는데, 자손들이 변(⻏)을 떼어버리고 풍(馮)으로 성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

임구 풍씨의 시조는 풍삼사(馮三仕)이다. 풍삼사는 명나라 태학(太學) 출신으로 중국 산동성 임구현 출신이다. 1645년(조선 인조 23년), 봉림대군(후에 효종)이 심양(瀋陽)에 있을 때 풍삼사는 명나라 광복을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9의사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이후 고향인 임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1788년(정조 12년), 조선 왕실은 명나라의 자손을 서용하기 위해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하고 풍삼사의 3대손인 풍경문을 장관(將官)으로 조용(調用)하였다.

인물

시조 풍삼사의 6대손 풍경문은 조선 영조 때 훈련원 주부를 거쳐 어모장군을 지냈고,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품계)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들 풍재검은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를 역임한 후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되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풍학조(풍재검의 아들)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그 외에 오위장 풍세주, 감찰 풍석기, 부호군 풍세룡 등이 대표적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인구

인구 조사에 따르면, 1985년 91가구 361명, 2000년 175가구 585명이었다. 2015년 기준으로 임구 풍씨 478명, 림구 풍씨 6명, 산동 풍씨 108명을 합산하여 총 592명으로 집계되었다.

집성촌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 지역이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 풍삼사의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해 있다.

족보

임구 풍씨의 족보(임구풍씨족보, 臨朐馮氏族譜)가 디지털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해당 족보의 서문은 1835년(헌종 1) 3월 대보단 수직관이었던 왕덕구가 지었으며, 1864년 8월에 5세손 학조가 다시 서문을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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