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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굉

임굉

임굉은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로, 서로 다른 시대에 활동한 두 명의 역사적 인물을 가리킨다.


1. 전한(前漢) 말기의 관료 임굉(任宏)

임굉(任宏, 생몰년 미상)은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관료로, 자(字)는 위공(偉公)이다. 《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와 예문지(藝文志) 등에 기록이 남아 있다.

기원전 10년(원연 3년), 호군도위(護軍都尉)에서 태복(太僕)으로 승진하였다. 기원전 8년(수화 원년)에는 집금오(執金吾)로 전임되었으며, 같은 해 성제(成帝)가 정도왕(定陶王, 훗날의 애제)을 황태자로 삼을 때 집금오 겸 수대홍려(守大鴻臚)로서 부절(符節)을 가지고 정도왕을 찾아가 모셔왔다. 집금오가 된 지 11개월 만에 대군태수(代郡太守)로 좌천되었다.

한편 기원전 26년(하평 3년), 성제의 명으로 보병교위(步兵校尉) 임굉이 병서(兵書)를 교정한 사실이 《한서》 예문지에 기록되어 있다. 청대 학자 도헌증(陶憲曾)은 이 보병교위 임굉이 태복을 지낸 임굉과 동일인물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2.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 임굉(林宏)

임굉(林宏, 1923~1950)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임병찬(林炳贊)이다.

출생 및 생애

1923년 2월 12일 경상남도 밀양군(현 밀양시) 삼랑진면 송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대구광역시 중구 소재)에 재학 중이었다.

독립운동 활동

1940년 11월, 대구사범학교 교내 문예부의 비밀문예지 《반딧불》을 통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1년 1월 23일, 졸업을 앞두고 장세파·김영복·최낙철·윤덕섭·이태길·이무영·강두안·안진강 등 동기생들과 함께 비밀결사 '연구회(硏究會)'를 결성하였다. 연구회는 조국 독립을 위한 실력 배양과 민족의식 고취를 표방하였으며, 임굉은 교육부 책임을 맡았다. 연구회 회원들은 국제 정세를 분석하여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광복 후 각자 전문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어 독립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였다.

1941년 4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함경북도 청진의 천마공립국민학교 훈도(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계속하였다.

체포와 옥고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가 발간한 항일 문예지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 전반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임굉도 1943년 1월 청진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되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3월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복역하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사망과 추서

출옥 후 옥중 고문과 건강 악화로 고통받다가 1950년 10월 2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 반고, 《한서》(漢書) 권19하 백관공경표, 권30 예문지
  • 사마광, 《자치통감》(資治通鑑) 권30, 권3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자료집》 9, 13
  • 최필숙,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 공훈전자사료관 (e-gonghun.mpva.go.kr)
  • 대구역사문화대전 (daegu.grandcultu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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