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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

임광(任珖, 1579년~164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字)는 자정(子瀞)이다. 사헌부감찰 익신(翊臣)의 아들이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생애

1609년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계축옥사(癸丑獄事)의 진행 과정을 목격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인조반정(1623년) 이후 순릉 참봉을 거쳐 162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각지의 행정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였다.

1636년 통신사(通信使) 정사(正使)가 되어 일본 에도 막부에 파견되었다. 이 사절단은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의미하는 통신사(通信使)로서, 당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를 알현하고 닛코(日光)에 있는 초대 쇼군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이 임무는 서양에서는 1834년 아이작 티칭(Isaac Titsingh)이 편찬한 《일본대일람》(Nipon o daï itsi ran)에 기록되어 소개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다시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1643년 좌부빈객(左副賓客)이 되어 우부빈객 김육(金堉)과 함께, 선양(瀋陽)에 볼모로 억류되었다가 귀환하게 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수행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청나라에서 사망하였으며,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기타

임광은 영광 굴비와 관련된 기록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영광군수로 재임할 당시 조정의 정승·판서 등에게 영광 굴비를 선물로 보냈다는 내용이 그의 문헌에서 확인되었으며, 이는 영광 굴비가 400여 년 전부터 귀한 선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한편, 동명이인으로 고려 전기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하여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등을 지낸 문신 임광(林光, 1088년~1152년)이 존재한다. 그는 1112년(예종 7)에 고려에 귀화하였고, 1114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묘청(妙淸)을 극렬하게 탄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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