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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재 (회계학자)

임경재(任璟宰, 1876년~1955년)는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에 걸쳐 활동한 회계학자이자 교육자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호는 원인(圓人)이다.

생애

임경재는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였다. 1893년 상경하여 1895년 관립외국어학교가 설립되자 일본어부(日本語部)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일본어부의 교과목 중 '관청급상용부기(官廳及商用簿記)'를 통해 부기(簿記)를 습득하였다.

1906년 광성의숙(廣成義塾)이 설립되자 1907년 그 학교의 강사가 되었고, 1908년 전임강사가 되었다. 1909년 학교명이 휘문의숙(徽文義塾)으로 개칭되면서 학감(學監)이 되었으며, 1916년 제2대 휘문의숙장에 취임하였다. 1918년 휘문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이 변경되면서 교장이 되었고, 1922년 재단이사를 겸임하다 1924년 사임하였다.

학문적 활동

임경재는 1908년 두 권의 부기서(簿記書)를 출판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간이상업부기』(1908)와 『신편은행부기학』(1908)이 있다. 『신편은행부기학』은 유승겸의 교열을 거쳐 휘문관에서 간행되었으며, 서양의 복식부기 원리에 따라 은행업무를 다룬 저서로서 서론, 총론과 함께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1913년부터 이듬해까지 『신문계』에 부기를 연재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 보성전문학교에서 부기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사회 활동

임경재는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최두선(崔斗善), 장지영(張志暎), 이병기(李秉岐), 김윤경(金允經) 등 15~16명의 동지와 함께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를 창립하여 초창기 국어운동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조선체육회의 간사로서 청소년 체력 향상에도 힘썼다.

온양에 있을 때인 1932년 이순신의 묘소와 위토가 경매에 처해질 위기에 처하자 각계각층의 성금으로 부채를 청산하여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았고, 현충사를 중건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대한 협력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아산군 자치회장으로 추대되어 혼란기의 치안유지에 앞장섰으며,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사립온양중학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온양지방의 육영사업에 헌신하였다.

평가

임경재는 한문과 국어에 능통한 교육자이자 학자로서, 한국 초기 회계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저술한 부기 관련 서적들은 한국 근대 회계학 수용의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요 참고 자료로는 『한국회계사연구』(윤근호, 한국연구원, 198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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