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林慶業, 1594년~1646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평택(平澤)이고,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다. 충청도 충주 달천촌 출생이며, 평안도 개천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전한다. 판서(判書) 임정(林整)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임황(林葟)이다.
1618년(광해군 10년) 아우 임사업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에서 정충신 휘하에서 반란군 토벌에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633년 청북방어사 겸 영변부사로 백마산성을 수축하고 북방 경비를 강화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주부윤으로서 백마산성을 방어하였으나, 청군이 이를 우회하여 남한산성을 포위하면서 조선은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다. 임경업은 철저한 친명배청파(親明排淸派) 무장으로, 청나라의 원병 요청을 받고 출병하였을 때에도 명군과 내통하여 청군에 협력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자 1643년 명나라로 망명하여 명나라 총병(摠兵) 벼슬을 받고 청나라 정벌을 준비하였으나,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45년 청나라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었고, 1646년(인조 24년) 심기원(沈器遠)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문초 끝에 사형되었다. 당시 그의 처형을 주도한 이는 친청파 인사였던 김자점(金自點)이었으며, 이후 김자점 역시 역모로 처형되었다.
사후 1697년(숙종 23년) 복관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충주 충렬사(忠烈祠), 선천 충민사(忠愍祠) 등에 배향되었다. 그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고대소설 《임경업전》이 민간에 널리 전승되었으며, 민간 신앙에서는 장군신(將軍神)으로 숭배되어 무속에서 수호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