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교육은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이후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서 시행한 식민지 교육정책 및 그에 따른 교육 현상을 총칭한다. 일제는 교육을 식민지 지배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며,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억압하고 일본 제국에 충성하는 신민(臣民)으로 동화시키는 것을 근본 목표로 삼았다.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기본 법령은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 으로, 1911년 8월 23일 칙령 제229호로 처음 공포된 이후 총 네 차례(1922년, 1938년, 1943년)에 걸쳐 개정되었다. 조선교육령은 개별 학교령 수준을 넘어 조선의 교육 전반을 규율하는 종합적 교육법규였으며, 그 제·개정은 식민통치 정책의 변화와 밀접히 연동되어 있었다.
제1차 조선교육령(1911~1922) 은 무단통치기(武斷統治期)에 해당하며, "교육에 관한 칙어(敎育勅語)"의 취지에 따라 충량(忠良)한 국민을 육성한다는 명분 아래 시행되었다. 핵심 원칙은 "시세(時勢)와 민도(民度)에 맞는 간이하고 실용적인 교육"이었으며, 이는 실질적으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제한적 교육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하였다. 보통학교 수업연한은 4년, 고등보통학교는 4년, 여자고등보통학교는 3년으로 일본 본토의 학제보다 짧게 설정되었고,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은 아예 설치되지 않았다. 교과과정은 일본어(당시 '국어'로 강제 규정)에 편중되었으며, 조선어는 별도 교과로만 존치되었다. 또한 1911년 사립학교규칙을 통해 민족주의계 사립학교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강화되었다.
제2차 조선교육령(1922~1938) 은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정치(文化政治)로의 전환 속에서 개정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를 내세워 일본 본토 학제와의 형식적 일치를 도모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국어(일본어)를 상용하는 자'와 '상용하지 않는 자'를 구분하는 이중적 구조를 유지하였다. 보통학교 수업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고, 조선어가 필수과목으로 규정되었으며, 사범학교와 대학 설립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 시기 1924년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었으나, 조선인 입학은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고등교육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한편 조선민립대학기성회가 결성되어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제3차 조선교육령(1938~1943) 은 중일전쟁 이후 황민화(皇民化)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공포되었다. 지원병 제도, 창씨개명과 함께 황민화 정책의 3대 축을 이루었으며, 학교 명칭이 일본과 동일하게 변경되었다(보통학교→소학교, 고등보통학교→중학교 등). 내선공학(內鮮共學)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실질적 차별은 지속되었다. 교육 내용은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과 전쟁 협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제4차 조선교육령(1943~1945) 은 태평양전쟁의 전황이 악화되면서 전시 동원 체제를 교육에 반영하기 위해 개정되었다. 수업연한이 단축되고, 학생들의 노동력 및 병력 동원이 제도화되었다. 1944년에는 전시교육령이 제정되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실질적 시행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교육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철저한 민족적 차별이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학교 명칭, 수업연한, 교육 내용, 교육예산 배분 등 모든 면에서 분리·차별되었다. 1919년 기준 조선인 인구 약 1,700만 명에 대해 보통학교는 484개교, 학생 수 약 84,000명에 불과했던 반면, 재조선 일본인 약 33만 명을 위한 소학교는 393개교, 학생 수 약 42,000명에 달했다.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조선인의 보통학교 취학률은 1912년 1.8%에서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약 30% 수준으로 증가하였으나, 일본인 아동의 취학률은 90%를 상회하였다.
교육 내용의 측면에서는 일본어 보급이 최우선 과제였으며, 일본 역사·지리·수신(修身) 교과를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식민지배의 정당성이 주입되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는 왜곡되거나 배제되었고,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조선어 과목마저 폐지되는 등 민족문화 말살 정책이 강화되었다. 실업교육이 장려된 반면 인문계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은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조선인은 주로 저숙련 노동력으로 양성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교육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교육 체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중앙집권적 교육행정 체제, 학벌주의, 학교 간 서열화, 입시 중심 교육 경쟁 등의 구조적 유산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식민지 교육의 잔존 효과로 분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