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낙태(인공임신중절)는 형법과 모체보호법이라는 두 법체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규율된다. 일본 형법 제29장(堕胎の罪)은 낙태를 원칙적으로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나, 모체보호법(母体保護法)이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제한적인 조건 아래 낙태가 허용되는 구조이다.
법적 체계
일본 형법 제212조(자기낙태죄)는 임신 중인 여성이 약물 또는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제213조(동의낙태죄)는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시킨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제214조(업무상낙태죄)는 의사, 조산사, 약사 등이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시킨 경우 3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제215조(불동의낙태죄)는 여성의 동의 없이 낙태시킨 경우를 처벌한다.
그러나 1948년 제정된 우생보호법(1996년 모체보호법으로 개정)이 형법의 예외를 규정하면서 실질적인 낙태 허용의 근거가 되었다. 현행 모체보호법 제14조에 따르면, 도도부현 의사회가 지정한 의사(지정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 본인 및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을 시행할 수 있다.
- 임신의 계속 또는 분만이 신체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하여, 또는 저항 또는 거절할 수 없는 사이에 간음되어 임신한 경우
배우자 동의 요건
모체보호법은 원칙적으로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한다. 다만 배우자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 또는 임신 후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만으로 충분하다. 가정폭력 등으로 혼인 관계가 사실상 파탄난 경우에도 배우자 동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후생노동성의 방침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많은 의사와 의료기관이 법적 문제를 우려하여 배우자의 서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임신중절 가능 기간
일본에서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 즉 일반적으로 임신 22주 이내까지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된다.
약물적 임신중절
2023년 4월, 일본 후생노동성은 영국 제약회사 라인파마(Linepharma)의 경구용 임신중절약(메피고팩,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병용)을 처음으로 승인하였다. 이는 프랑스에서 1988년 세계 최초로 승인된 이후 약 35년 만의 일이다. 약물적 임신중절은 임신 9주 0일까지 이용 가능하며, 2제목 복용 시에는 입원이 필요하고 임신중절이 확인될 때까지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2024년 9월 기준으로 입원 요건의 완화가 검토되고 있다.
비용
일본에서는 임신중절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자유진료(비보험) 항목이다. 비용은 일반적으로 10만~20만 엔(한화 약 90만~180만 원) 사이이며, 약물적 임신중절의 경우 약 10만 엔 정도이다.
통계
일본 후생노동성의 위생행정보고례에 따르면,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127,992건으로 전년도 대비 1,258건(1.0%) 증가하였다. 연령별로는 20~24세가 33,663건으로 가장 많았고, 25~29세 28,676건, 30~34세 22,424건, 35~39세 20,386건 순이었다. 20세 미만은 10,844건이었다. 인공임신중절 실시율(여자인구 1,000명당)은 5.5이며, 20~24세가 11.1로 가장 높았다.
장기 추세로 보면 1960년에는 연간 1,063,256건에 달했던 낙태 건수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9년에는 156,430건을 기록하였으며, 2020년에는 145,340건으로 전년 대비 7.3% 감소하였다.
역사적 배경
에도 막부는 1842년에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하였고, 1869년에는 전국적으로 금지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80년 최초의 일본 형법이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였고, 1907년 개정 형법에서 처벌이 더욱 강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인구 급증과 기아 위기에 직면하였고, 1948년 우생보호법을 제정하여 특별한 사유에 의한 임신중절을 합법화하였다. 1949년 개정으로 경제적 이유에 의한 낙태가 추가되었고, 1952년 개정으로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1996년 법률 명칭이 우생보호법에서 모체보호법으로 변경되었다.
구 우생보호법과 강제불임 문제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구 우생보호법은 유전성 질환자, 지적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임신중절 및 불임수술을 강제한 역사가 있다. 일본 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불임수술을 받은 24,993명 중 강제로 수술을 받은 경우가 16,475명에 달하며, 최연소 피해자는 9세였다. 2024년 7월 3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구 우생보호법에 따른 강제불임수술이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후 일본 정부는 피해자에게 1,500만 엔, 배우자에게 500만 엔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현행 쟁점
일본의 낙태 관련 제도는 국제적으로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일본에 대해 낙태 관련 형법 규정(낙태죄)의 폐지와 배우자 동의 요건의 철폐를 반복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G7 국가 중 낙태 시 배우자 동의를 요구하는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2023년에는 낙태죄 폐지와 모체보호법 개정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이 야당 의원에 의해 제출되었으나 본격적인 심의 없이 폐기되었다. 2024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SRHR(성과 재생산에 관한 건강과 권리) 관련 공약에서도 낙태죄 및 배우자 동의 요건의 존폐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