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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궤간논쟁

일본의 궤간논쟁(일본어: 日本の改軌論争)은 일본의 철도가 시작될 무렵 케이프 궤간(협궤, 1,067mm)을 채택한 것에 대하여, 일본국유철도가 표준궤(1,435mm)로 궤간을 변경하려고 추진한 일련의 운동과 그에 관한 논쟁을 가리킨다. 일본어 표현인 '改軌論争'(카이키론소)은 '궤간 변경(改軌)을 둘러싼 논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경

일본에서 철도가 처음 시작될 당시,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외국인 자문단의 의견을 참고하여 레일의 폭을 케이프 궤간, 즉 1,067mm의 협궤로 정하였다. 이는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널리 채택되고 있던 표준궤(1,435mm)보다 좁은 규격으로, 최고 속도와 수송력 면에서 표준궤에 뒤떨어지는 것이었다. 철도 개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표준 규격이었던 표준궤로 개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나, 정치적 대립과 예산 문제 등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국유철도에서의 논쟁 과정

1887년경 철도 수송량이 급증하면서 일본제국 육군 등을 중심으로 표준궤로의 궤간 변경을 요구하는 '철도개정권의안'이 발의되었다. 이에 대해 당시 철도국장이자 철도 국유론자였던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는 도카이도 본선조차 개업하지 않은 현실에서 노선 확대가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의안을 반려하였다. 이노우에는 복잡한 일본의 지형에서 협궤가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일전쟁 이후 수송량이 더욱 증가하자 1896년 일본 체신성(逓信省)은 궤제취조위원회(軌制取調委員会)를 발족하여 궤간 변경에 필요한 비용과 이점, 단점을 조사하였다. 그러나 철도국 내에 궤간 변경 찬성론자가 거의 없었고, 군부가 철도 국유화에 대한 방침을 바꾸면서 결국 1899년 위원회는 해산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남만주철도 총재를 지낸 고토 신페이(後藤新平)는 1908년 철도원(鉄道院) 초대 총재로 취임하여 일본 본토 철도의 표준궤화를 제안하였다. 1910년 철도 회의에서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 등 주요 14개 노선을 표준궤로 변경하는 안이 가결되었으나, 하라 다카시(原敬)가 이끄는 입헌정우회가 전국 노선 건설을 우선하는 '건주개종'(建主改從) 원칙을 내세우며 반대하였다. 결국 의회는 궤간 변경 예산을 취소하였다.

1914년 오쿠마 내각이 들어서면서 표준궤화 논의가 다시 추진되었다. 1917년에는 요코하마선의 일부 구간에서 일본 최초로 표준궤 개조 실험이 실시되었으며, 이후 '국유철도 궤간 변경안'이 작성되어 혼슈 약 6,600km의 궤도를 개조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총리와 대장성,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1918년 쌀 폭동으로 데라우치 내각이 붕괴한 뒤 하라 내각이 들어서자 1919년 철도대신 도코나미 다케지로(床次竹二郎)가 광궤화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이를 끝으로 기존 국유철도의 표준궤화 계획은 종료되었다.

표준궤 철도의 실현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8년경,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의 수송량 폭증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간선 건설이 논의되었다. 1939년 설립된 철도간선조사회에서 표준궤 방식의 신선 부설이 결정되었고, 이 계획은 '탄환열차'로 불리며 1940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전황 악화로 1943년 중단되었다.

전후 1950년대에 도카이도 본선의 수송력 부족 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표준궤 방식의 신선 부설이 재추진되었다. 1964년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업하면서 일본 국철 최초의 표준궤 철도가 실현되었다. 이후 산요·도호쿠·조에쓰 신칸센 등이 순차적으로 건설되었다.

사철에서의 궤간 상황

일본의 사설 철도(사철)에서는 국철과 달리 표준궤를 채택한 사례가 많았다.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한 전기철도 회사들이 표준궤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이는 고속 운전에 유리한 규격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도쿄 지역의 일부 철도 회사는 1,372mm라는 특이한 궤간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었고, 게이세이 전철 등은 지하철과의 상호 직통 운전을 위해 궤간 변경 공사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1998년부터는 신칸센과 재래선 간 직통 운전을 위한 '궤간 가변 전동차' 개발이 국토교통성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현대적 의미

이 궤간논쟁은 공공 서비스의 경제학, 국가 정책, 기술 발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논쟁이었다. 일본에서는 이후 교통·통신·방송 등 각 분야에서 유사한 규격 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궤간 변경(改軌)의 전철은 밟지 않도록"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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