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원주민론(일본어: 日本原住民論, 니혼겐쥬민론)은 역사소설가 야기리 토메오(八切止夫)가 1960년대 이후 제기한 일련의 역사관과, 이를 일본 신좌파(新左翼) 세력이 재해석한 역사관을 통틀어 가리키는 개념이다.
야기리 토메오의 주장에 따르면,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외래 집단에 의한 정복 왕조이며, 그 이전부터 일본열도에 존재하던 선주(先住) 민족의 후예가 부락민(部落民)이나 산카(サンカ)와 같은 천민 집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야기리는 이 "원주민"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황통(皇統)에 연결됨으로써 황실이 원주민 통합의 상징이 되었다고 상정했으며, 저술에서 황실에 대한 경의 표현을 일관하여 좌익 이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야기리 이전에도 야마토 정권을 외래 정복 왕조로 보는 기마민족 정복왕조설(江上波夫), 부락민과 산카의 기원을 고대 선주민족으로 보는 학설(菊池山哉, 柳田國男, 三角寛) 등은 각각 존재했으나, 야기리는 이들을 결합하여 독자적인 '야기리 사관(八切史観)'을 형성했다. 또한 야기리는 황실의 기원을 중동에 두는 '천황 아랍 도래설'도 주장했는데, 이는 전전(戰前) 우익 사상가들이 주장한 스메루 학설(일본-수메르 동조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후 일본 신좌파 운동가들은 야기리의 일본원주민론을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으로 재해석했다. 잠행 중이던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간부 우메나이 쓰네오(梅内恒夫)는 이 이론에 촉발되어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로부터 일제타도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라는 문서를 발표했으며, 여기서 처음으로 '일제타도'의 근거가 메이지 이후 일본제국의 악행에서 '일본 건국 이래의 원주민 박해'로 전환되었다. 궁민혁명론(窮民革命論)을 주장한 오오타 류(太田竜)도 야기리를 "진정한 인민적 역사가"라고 극찬했다.
신좌파 운동가들은 '일본 원주민의 복권'을 내걸고, 야마토 조정에 의해 파괴된 지방 정권을 찬양함으로써 천황제의 상대화를 도모하는 독자적 역사관을 확립했다. 이 역사관은 가토 사부로(加藤三郎) 등의 논섹트 래디컬(노선 미조직 급진파) 운동가들에 의한 반일(反日) 테러 사건을 촉발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기기(記紀) 이전의 역사를 전했다'고 알려진 고사고전(古史古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1980년대 일본의 오컬트 붐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자 하라다 미노루(原田実)에 따르면, 옴진리교(オウム真理教)도 이러한 풍조 속에서 대두한 일종의 위사(僞史) 운동이며, 국가 전복 계획의 배경에도 이러한 이념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된다.
일본원주민론은 주류 역사학계에서 인정받는 정설이 아니며, 유사역사학(疑似歴史学)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