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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무성

일본 내무성(일본어: 内務省, Home Ministry)은 1873년(메이지 6년) 11월 10일부터 1947년(쇼와 22년) 12월 31일까지 존재한 일본의 중앙행정기관이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지령으로 해체되었다. 내정(内政)과 민정(民政)을 담당하였으며, 장관인 내무대신(内務大臣)은 총리대신 다음에 해당하는 부총리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설립 배경 및 연혁

메이지 유신 이후, 태정관(太政官) 체제 아래에서 1873년 11월 10일 대장성(大蔵省)·사법성(司法省)·공부성(工部省) 등으로부터 소관 사무의 일부를 이관받는 형태로 설치되었다. 초대 내무경(内務卿)은 대구보리통(大久保利通)이었다. 일본은 프랑스 및 프로이센의 내무 제도를 본따, 율령제의 민부성(民部省)을 강력한 행정권을 보유한 내무성으로 개편하였다. 설치 당시 소관 업무는 권업(勧業, 산업 장려)과 경찰이 중심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철도·통신을 비롯하여 대장성·사법성·문부성의 소관 사항을 제외한 내정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농상무성(農商務省), 체신성(逓信省) 등 각 성(省)이 독립하면서, 다이쇼 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방행정·경찰·토목·위생·사회(노동)·국가신토(國家神道) 등으로 관할 범위가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지방 관청의 장을 직접 임명하고 도부현(都府県) 청의 재정 감독권 및 토건 사업권을 보유함으로써 각 성의 소관 사항에도 간접적으로 관여하며 내정에서 중심 지위를 계속 유지하였다.

조직 구성

초기 조직(1873년)은 지리료(地理寮)·호적료(戸籍寮)·경보료(警保寮)·토목료(土木寮)·권업료(勧業寮)·역체료(駅逓寮)의 6료 체제로 구성되었다. 1936년(쇼와 11년)에는 대신관방(大臣官房), 신사국(神社局), 지방국(地方局), 경보국(警保局), 토목국(土木局), 위생국(衛生局), 사회국(社会局) 등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내무성 차관과 경보국장, 경시총감(警視総監)은 '내무성 3역(三役)'으로 불리는 중요 직책이었으며, 퇴임 이후 거의 절반이 귀족원(貴族院)의 칙선의원(勅選議員)이 되었다.

권력의 성격

내무성은 대장성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관청 중의 관청', '관료 세력의 총본산', '관료의 본거' 등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내무성의 영향력이 강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지방 단체에 대한 감독권, 특히 지방 재정 감독권의 존재였다. 이를 통해 내무성 소관 사항뿐 아니라 문부성·농림성·상공성 등의 업무에도 강력한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주사변 및 중일 전쟁 이후에는 방공(防空) 업무와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 등의 동원 사업을 주관하였다. 1938년에는 위생국과 사회국이 후생성(厚生省)으로 독립하였으나, 인사는 내무성과 일체로 운용되었다.

해체 및 폐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GHQ는 특별고등경찰(특고)과 검열, 국가신토 등의 폐지를 지시하였으며 중앙집권적 경찰 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다. 또한 경찰 간부 중 공직 추방 대상이 된 관료가 속출하였고, 일본국 헌법 공포로 도도부현 지사가 선출직으로 변경되는 등 지방 행정에도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GHQ는 일본의 민주화를 위해 내무성의 분권화가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폐지를 지령하였고, 이에 따라 1947년 12월 31일을 기해 74년여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폐지 후 계승

내무성이 담당하던 업무는 여러 행정 기관으로 분산 계승되었다. 지방 행정은 자치성(自治省)을 거쳐 현재의 총무성(総務省)이, 경찰 부분은 국가공안위원회(国家公安委員会)와 경찰청(警察庁)이, 토목은 건설성을 거쳐 국토교통성(国土交通省)이, 위생 및 사회 부분은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이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부처를 통틀어 '구(舊) 내무성계 관청'이라고 부른다. 현재까지도 내각관방부장관(事務)과 궁내청장관에는 이들 구 내무성계 관청 출신자가 임명되는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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