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리아 왕국은 역사적으로 두 시기에 걸쳐 존재한 서로 다른 정치적 실체를 가리킨다. 하나는 고대 발칸 반도 서부에서 존재한 일리리아인들의 왕국이며, 다른 하나는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구성 왕국이다.
1. 고대 일리리아 왕국 (Ancient Illyrian Kingdom)
고대 일리리아 왕국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발칸 반도 서부(오늘날의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일부)에 걸쳐 존재했던 일리리아 부족 연합체의 정치적 실체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는 단일한 왕국이 아니라 여러 부족 왕조가 교대로 지배한 연합체였으며,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사료에서 "일리리아인의 왕(King of the Illyrians)"으로 지칭되는 단일 지도자 아래 여러 일리리아 부족이 연합한 형태로 존재했다.
가장 초기에 기록된 일리리아 왕국은 엥켈레아이(Enchelei) 부족의 왕국으로, 기원전 8~7세기경 전성기를 누렸으나 기원전 6세기경 쇠퇴하였다. 역사상 최초로 확인된 일리리아 왕은 기원전 400년경 남부 일리리아에서 등장한 바르딜리스(Bardylis)로, 다사레티스(Dassaretis)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남부 일리리아 부족을 통합하고 마케도니아와 에페이로스를 여러 차례 격파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마케도니아의 왕)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면서 쇠퇴하였다.
기원전 3세기경에는 아르디아이(Ardiaei) 부족이 일리리아 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아르디아이 왕 아그론(Agron, 재위 기원전 250~230년)과 그의 왕비 테우타(Teuta) 치하에서 일리리아 왕국은 육해군을 갖춘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네레트바 강에서 에페이로스 경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 시기 일리리아 왕국은 로마 공화정의 주요 적대 세력 중 하나가 되었으며, 아드리아해에서 로마의 주요 위협으로 작용했다. 로마와의 일리리아 전쟁(Illyro-Roman Wars, 기원전 229~168년)에서 패배한 후 왕국의 주도권은 소멸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일리리아인의 왕"은 라베아타이(Labeatae) 부족의 겐티우스(Gentius, 재위 기원전 181~168년)로, 기원전 168년 제3차 일리리아 전쟁에서 로마에 패배하여 왕국은 해체되고 왕은 포로로 잡혔다.
고대 일리리아 왕국의 주요 수도로는 리존(Rhizon)과 스코드라(Skodra, 오늘날의 슈코더르)가 있었다. 정치 체제는 세습 군주제였으며, 일리리아 왕들은 다른 세력과의 동맹을 위해 혼인 관계를 활용하였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일리리아 왕국의 핵심을 이룬 부족은 타울란티이(Taulantii), 플레라이(Pleraei), 그라바이(Grabaei), 라베아타이(Labeatae) 등이었다.
2.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리리아 왕국 (Kingdom of Illyria, 1816~1849)
일리리아 왕국은 1816년 8월 3일부터 1849년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구성 왕국(왕관령)이었다. 이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점령했던 일리리아 지방(Illyrian Provinces, Provinces illyriennes)이 제6차 연정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에 의해 재정복되고, 빈 회의의 최종 의정서에 따라 설립되었다.
행정 중심지는 공식적으로 류블랴나(Ljubljana, 독일어명: Laibach)에 있었다. 초창기에는 크로아티아 왕국 영토도 포함되었으나, 크로아티아와 헝가리의 반발로 인해 1822년 크로아티아 지역이 분리되었다. 이후 이 왕국은 슬로베니아어 사용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되었다.
왕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케른텐 주), 슬로베니아(카르니올라, 슬로베니아 리토랄), 크로아티아(이스트라 주 일부, 크바르네르 만 섬들), 이탈리아(트리에스테, 고리치아 일부)에 걸쳐 있었다. 공용어는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독일어였으며, 국교는 로마 가톨릭교였다.
1848년 혁명(Spring of Nations)의 여파로 이 왕국은 해산되어 카르니올라 공국, 케른텐 공국, 오스트리아 해안 지대(Austrian Littoral)의 세 오스트리아 왕관령으로 분할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849년 12월 8일 폐지되었으나, 합스부르크 군주는 1915년까지 황제 칙령에서 "일리리아 왕" 칭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이 왕국은 오스트리아 제국 내에서 정치적 실권을 거의 갖지 못했으며, 합스부르크 군주의 칭호에서도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다음으로 마지막 순서에 위치하는 등 주변적 중요성만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