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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한수

인한수(印漢洙, 1881년 1월 20일 ~ 1919년 4월 3일)는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교동(喬桐)이고, 호는 송원(松園)이며,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생애 초기 및 관료 생활

1899년 대한제국 하급 관료에 천거되어 1909년까지 충청남도 홍성군, 예산군, 천안군, 아산군, 보령군, 당진군 등에서 군서기관 직책을 역임하였다. 관료직에서 퇴임한 후에는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성리학 중급 대표 향반으로 활동하며 훈도(훈장) 역할을 하였다.

독립만세운동 참여와 순국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인한수는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마을의 통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그는 마을 이장 장문환(張文煥) 등과 함께 1919년 4월 3일 고덕면 한내장(대천시장)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하고, 사전에 주민들에게 통지하였다.

4월 3일, 한내장에 약 3,000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장 인근 헌병주재소에서 헌병오장 시무라 마쓰다로(志村松太郞) 등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다. 인한수는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칼에 목을 찔려 치명상을 입었으나, 말을 탄 헌병의 다리를 끌어당겨 넘어뜨리고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사후 평가

대한민국 정부는 인한수의 공훈을 기려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묘소는 처음 예산군 고덕면 지곡리에 있었으나, 이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예산군 고덕면 대천시장에는 한내장 4·3 독립만세운동기념탑과 인한수의 현충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4월 3일 기념식과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예산군은 2024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인한수 의사를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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