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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산성

인천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의 계양산 동쪽 능선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계양산은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395m이며, 옛 부평도호부의 진산으로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불렸다. 계양산성은 계양산의 주봉(395m)이 아니라 주봉 동측에 있는 해발 202m의 봉우리(고성산)를 에워싸는 형상으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성곽은 고성산을 중심으로 봉우리를 머리띠처럼 둘러싸며, 성곽이 높은 지대와 동쪽으로 이어진 비탈, 낮은 평지를 감싸 마치 관모의 형태와 같다고 하여 사모봉형 산성으로도 분류된다. 성곽의 둘레는 약 1,184m에 이른다.

성의 초축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동국여지지』와 『증보문헌비고』 등에 "계양고산성은 석축 둘레가 1,937척이며 삼국시대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삼국시대에 우휴모탁국이 있었으며 이후 백제의 주부토현(主夫吐縣)으로 편입되었다.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면 처음에는 백제에 의해 축조되었고,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증축·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에서는 백제 시기의 토기와 함께 『논어』가 적힌 목간이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계양산성은 한강 하류 남쪽의 대표적인 삼국시대 성곽으로, 남으로 문학산성을 관할하고 북으로 김포반도의 산성들과 연계하여 경기만 북부 지역을 방어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만 일대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해안성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휘본부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선시대인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계양산 고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1,937척이며 지금은 무너져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폐성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에서 명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계양산성은 오랫동안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었으나, 1992년 5월 15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고, 2003년부터 2020년까지 10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을 통해 북문지, 배수시설, 건물지, 집수 시설, 내벽보축 등 다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성곽은 수직으로 목재 기둥을 세우고 흙을 다져 쌓은 뒤 외벽을 석재로 두르는 토심석축 방식으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축조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 5월 22일 대한민국 사적 제556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2020년에 계양산성박물관이 개관하여 계양산성의 발굴 유물과 우리나라 산성의 발달사를 전시하고 있다. 계양산성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산성 전문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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