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李孝祥, 1906~1989)은 대한민국의 교육자, 시인, 정치인이다. 호는 한솔(一松),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세례명은 아길로이다. 1906년 1월 14일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학력 및 초기 생애 1912년 해성학교(현 효성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근대 교육을 받았고,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 식민 교육의 부당성에 항거하여 동맹휴교를 주도하다 투옥된 경력이 있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0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벨기에 뢰번 가톨릭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과 문학을 수학하였다.
교육 활동 1930년 귀국 후 대구의 교남학교(현 대륜고등학교)를 재건하여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36년 《가톨릭청년》지에 시 「기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가톨릭 사상에 입각한 서정시를 주로 창작하였다. 1945년 경상북도 학무국장에 취임하였고, 1952년 경북대학교 문리대 교수 및 문리대학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나의 강산아》, 《교육의 근본문제》, 《인간문제》 등이 있고, 시집으로 《사랑》, 《안경》, 《산》, 《바다》, 《인생》 등이 있다.
정치 활동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참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사퇴하였다. 이후 민주공화당에 참여하여 1963년 제6대 국회의원(대구시 남구)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 제6·7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이는 역대 최장수 국회의장 재임 기록이다. 이후 제9대(1973년)와 제10대(1979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의장서리 및 총재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1980년 정계 은퇴 후 1989년 6월 18일 대구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평가 및 논란 이효상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을 국회에서 변칙 통과시키는 데 관여하였으며,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에서 "신라 천 년 만의 임금" 등의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초기 사례로 지목되기도 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교남학교 교장 재직 시절 제자들에게 학도병 지원을 독려한 이력이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제기된다.
상훈 서독 1급 대십자훈장, 교황청 대십자기사훈장, 말레이시아 판쿠안네가라 최고훈장 등을 수훈하였다.
가족 슬하에 3남을 두었으며, 차남 이문희(바오로)는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을 역임한 고위 성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