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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이회영(李會榮, 1867년 ~ 1932년)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 교육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우당(友堂), 아명은 회룡(會龍)이다.

생애 이회영은 1867년(고종 4년) 서울에서 이석영(李石榮)의 넷째 동생으로 태어났다. 형 이석영, 이철영(李喆榮), 이시영(李始榮) 등과 함께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직후 가문 전체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힘썼다.

주요 활동 1911년 형제들과 함께 만주 유하현(柳河縣)에 경학사(耕學社)를 설립하고, 1919년에는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세워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전신을 마련하는 등 독립군 양성 교육 사업에 주력하였다. 또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 조직에 참여하고, 1920년대에는 무정부주의 단체인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결성하여 기관지 《정의공보(正義公報)》를 발간하는 등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최후 1932년 11월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국하였다. 일제는 그를 다롄(大連)으로 압송하던 중 사망하자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하였으며, 유해는 서울 강북구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 내 이회영 묘역에 안장되었다.

사후 평가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2010년에는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우당기념관이 개관하여 그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고 있다. 형 이시영(초대 부통령), 조카 이규창(독립운동가) 등 일가족 다수가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가문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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