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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협우

이협우(李協雨, 1921년~1987년 8월 11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제3대·제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경상북도 경주군 내남면 망성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대구공립농림학교(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의 행적에 대해서는 고등계 형사로 근무했다는 증언과, 만주로 건너갔다가 1943년경 고향으로 돌아와 농회 기수 및 내남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청년단 내남면 오단부단장, 내남면 수리조합장 등을 지냈으며, 1949년경 내남면 민보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49년부터 1950년에 걸쳐 내남면 일대에서 다수의 주민을 학살한 혐의(소위 '이협우 사건')가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보고되고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10세 미만 어린이를 포함한 140명 이상의 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2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청년단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54년 제3대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재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에 입당하여 자유당 월성군당 위원장 및 조직부위원장을 지냈으며, 1958년 제4대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3선에 성공하였다. 다만 국회 내에서의 입법 활동은 미미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주민 학살 사건의 피의자로 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혁명재판에서 감형되었고, 1963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이후 1975년에는 민주회복국민회의 경주·월성군지부 상임대표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87년 8월 11일 경상북도 경주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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