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조선 전기 연산군·중종·명종 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 시조 작가이다. 자는 비중(菲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이며,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생애
1467년(세조 13) 경상도 안동 도산 분천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아버지 이흠(李欽)과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홍귀달(洪貴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나,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하였다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사헌부지평에 복직되었다.
이후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성주목사 등 여러 지방관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고,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 76세의 나이로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이후 명종 때 숭정대부(崇政大夫)의 품계에 올랐으며,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였다. 1555년(명종 10) 향년 89세로 사망하였다.
문학 활동
이현보는 국문 시조(時調) 창작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고려 때부터 전해 내려오던 <어부가(漁父歌)>를 장가 9장과 단가 5장으로 개작하였으며, <효빈가(效嚬歌)>, <농암가(聾巖歌)>, <생일가(生日歌)> 등의 시조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청구영언>, <해동가요> 등에 수록되어 전한다. 자연에 은거하며 강호(江湖)의 한정(閑情)을 노래한 그의 시조는 조선 후기 강호문학의 전통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 등으로 계승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聾巖集)> 5권 2책이 있다.
평가 및 문화재
이현보는 청렴한 관리로 알려져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효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001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그의 초상화(이현보 초상)는 1986년 보물 제872호로 지정되었으며, 1537년 동화사의 승려 화가 옥준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분강서원(汾江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