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李通, 168년 ~ 209년)은 중국 후한 말기의 인물로, 조조(曹操) 휘하의 군인이다. 자는 문달(文達)이며, 아명(兒名)은 만억(萬億)이다. 형주 강하군 평춘현(平春縣) 출신이다.
생애
이통은 의협심이 강한 장수로, 처음에 고향 사람 진공(陳恭)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황건적을 물리쳤다. 196년(건안 원년)에 군사를 거느리고 허도(許都)로 가서 조조의 부하가 되어 진위중랑장(振威中郎將)에 임명되었다.
198년에는 장수(張繡)를 격파한 공로로 비장군(裨將軍)이 되었다. 200년 관도 대전 당시, 원소(袁紹)가 이통에게 정남장군(征南將軍) 벼슬을 제안하며 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조조의 편에 남았다. 이후 회남(淮南)과 여남(汝南) 일대를 평정하여 여남태수(汝南太守)가 되었다.
209년, 유비(劉備)와 주유(周瑜)가 조인(曹仁)을 강릉(江陵)에서 포위하고, 관우(關羽)가 북쪽 길을 차단하자, 이통은 군사를 이끌고 관우를 공격하며 포위망을 뚫고 조인을 구출하였다. 이 전투에서 이통은 말에서 내려 방책을 걷어내고 포위권으로 진입하여 싸우며 전진하였는데, 그 무용이 여러 장수 중 가장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공을 세운 직후 병으로 사망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정사(正史)와 달리,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통이 211년 동관 전투에서 마초(馬超)와 싸우다가 "역적의 개가 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라고 외치며 창에 찔려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역사적 기록과 다른 허구적 설정이다.
평가
이통은 조조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으며, 원소와 유표(劉表)의 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조조의 수하에 남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남군 공방전에서 조인을 구출한 공로는 그의 대표적인 전공으로 꼽힌다. 그의 아들은 이서(李敍)와 이기(李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