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주타(伊東忠太, 1867년 11월 21일 ~ 1954년 4월 7일)는 일본의 건축가이자 건축사가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걸쳐 활동했으며, 호는 홍운(紅雲)이다. 위계·훈등·학위·칭호로는 정삼위·훈이등서보장(勲二等瑞宝章)·공학박사·도쿄제국대학 명예교수·와세다대학 교수를 지냈다.
데와국(出羽国) 요네자와 출신으로, 요네자와시의 명예시민 제1호로 지정되었다. 태어난 해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1867년(게이오 3년) 11월 21일 경이며, 일부 자료는 10월 26일 설도 병기하고 있다. 아버지 이토 유준(伊東祐順)은 요네자와 번의 군의(軍医)였다. 소년 시절에는 도쿄와 지바현 사쿠라에서 보냈으며, 1885년 제일고등중학교에 편입하였다.
1892년 제국대학(현 도쿄대학)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졸업 논문은 〈건축철학〉이었다. 1893년 〈호류지 건축론〉(法隆寺建築論)을 발표하여 호류지가 일본 최고(最古)의 사원 건축임을 학문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일본 건축사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 이는 서양 건축학의 방법론에 기초하면서 일본 건축을 본격적으로 재검토한 선구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일본어에서 '조가(造家)'로 쓰이던 용어를 '건축(建築)'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02년부터 약 3년간 중국, 인도, 터키 등지에서 건축학 연구를 위한 해외 조사를 수행하였다. 1905년 귀국하여 도쿄제국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1909년에는 〈건축진화론〉(建築進化論)을 《건축잡지》에 발표하여 자신의 건축 이론을 제시하였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는 헤이안 신궁(1895년, 공동 설계), 메이지 신궁(1920년, 공동 설계), 도쿄상과대학 가네마쓰 강당(1927년), 쓰키지 혼간지(1934년) 등이 있다. 특히 쓰키지 혼간지는 인도·동남아시아 건축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조선신궁(1925년), 야스쿠니 신사 신문(1933년) 등의 설계에도 참여하였다.
1923년에는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함께 철거가 결정되었던 슈리성 정전의 보존을 위해 진력한 기록이 있다. 1928년 제국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뒤 도쿄제국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1937년 제국예술원 회원, 1943년 건축계 최초로 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1954년 4월 7일 사망하였으며, 향년 87세였다.
이토 주타는 근대 일본 건축사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일본 전통 건축과 아시아 각지의 건축 유산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일본 건축사 학문 체계를 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