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이탈리아어: italo-argentini, 스페인어: italoargentinos)은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하였거나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민족 집단이다.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에서는 '타노(tano)'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나폴리인을 뜻하는 '나풀리타노(Napulitano)'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개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의 약 62.5%에 해당하는 약 2,500만~3,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이탈리아 본국 밖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이탈리아계 공동체이다. 2023년 기준 이탈리아 출생 아르헨티나 거주자는 약 84,437명으로 집계된다.
이민의 역사
이탈리아인의 아르헨티나 이민은 17세기 후반부터 소규모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대규모 이민은 185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약 100년간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약 350만 명의 이탈리아인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다. 특히 1880년부터 1920년까지의 '유럽 대이민 물결' 시기에 약 200만 명이 유입되었으며, 1887년 한 해에는 아르헨티나 전체 이민자의 60.4%가 이탈리아인이었다.
이민의 주요 원인으로는 이탈리아 측의 광범위한 빈곤, 높은 인구 압력, 과중한 세금 부담이 있었고, 아르헨티나 측은 1853년 헌법 제25조에서 유럽 이민을 장려한다고 명시할 정도로 노동력과 인구 유입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 1876년에는 무상 토지 할당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1882년에는 모든 가족에게 25헥타르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지역별 기원
19세기에는 주로 북부 이탈리아(피에몬테, 리구리아, 베네토,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롬바르디아) 출신의 농민들이 이주하였고, 이들은 주로 농촌 지역에 정착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북부 이탈리아의 산업화로 인해 이민의 중심이 남부 이탈리아(캄파니아, 칼라브리아, 시칠리아)로 이동하였으며, 남부 출신 이민자들은 대도시를 선호하였다. 1876년부터 1930년까지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약 238만 명의 이탈리아인 중 47%는 남부 출신, 41%는 북부 출신, 12%는 중부 출신이었다.
정착 지역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 집중적으로 정착하였다. 191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는 이탈리아 출생 주민이 30만 명 이상 거주하여 수도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였고, 이는 아르헨티나 전체 이탈리아 이민의 60%에 해당하였다. 그 외에도 산타페주, 엔트레리오스주, 코르도바주, 라팜파주, 투쿠만주 등에 상당한 이탈리아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보카(La Boca) 지구는 특히 이탈리아계가 밀집한 지역으로, 1895년 당시 상인의 80%, 노동자의 70%가 이탈리아인이었다.
문화적 영향
언어
이탈리아어는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어, 영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약 150만 명 이상의 화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규모 이민에도 불구하고 표준 이탈리아어가 아닌 각 지역 방언이 주로 사용되었고, 스페인어와의 유사성으로 인해 언어적 동화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탈리아 이민은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의 억양 패턴에 지속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위원회(CONICET)의 연구에 따르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스페인어 억양은 나폴리어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 방언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는 20세기 초 남부 이탈리아 대규모 이민 이후 형성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은어인 룬파르도(Lunfardo)는 이탈리아어, 특히 북부 이탈리아 방언에서 많은 어휘를 차용하였으며, 탱고 가사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한편 이탈리아 이민 1세대 사이에서는 이탈리아어 방언과 스페인어가 혼합된 피진어인 코콜리체(Cocoliche)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세대에서는 점차 소멸되었다.
요리
아르헨티나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으며,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식단은 지중해식 식단의 변형으로 간주된다. 피자, 파스타(탈라리네, 라비올레스, 뇨키스, 라사냐, 카넬로네스 등), 폴렌타, 밀라네사 등이 아르헨티나의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밀라네사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전한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에서 유래하였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매년 5월 3일을 '밀라네사의 날'로 기념할 정도로 국민 음식이 되었다.
그 외에도 판둘체(제노바식 파네토네), 파스타프롤라, 소렌티노스, 파이나(리구리아식 파리나타), 레지아니토 치즈, 사르도 치즈, 프로볼로네 치즈, 그리고 젤라토(아이스크림) 등 이탈리아에서 기원한 다양한 음식이 아르헨티나 요리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음료로는 페르네트(Fernet)와 간시아(Gancia) 같은 이탈리아계 주류가 널리 소비된다.
건축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조반니 키오냐(Giovanni Chiogna)는 이탈리아-아르헨티나 전력회사(CIAE)의 의뢰로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에 200개 이상의 발전소 및 변전소 건물을 피렌체 신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설하여 도시 경관에 이탈리아 건축의 흔적을 남겼다.
사회·제도
1858년 7월 18일에는 남미 최초의 이탈리아계 기관인 '이탈리아 상호부조 및 교육 협회(Unione y Benevolenza)'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설립되었다. 단테 알리기에리 협회는 아르헨티나 전역에 126개의 지부를 두고 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부는 이탈리아 본국 밖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아르헨티나 국가 법률 제24,561호는 매년 6월 3일을 '이탈리아 이민자의 날'로 지정하여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기여를 기념하고 있다. 이 날짜는 제노바계인 마누엘 벨그라노(아르헨티나 국기의 창안자)의 탄생일에서 유래하였다.
주요 인물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아르헨티나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치 분야에서는 마누엘 벨그라노(독립 영웅), 후안 도밍고 페론(전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전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현 대통령) 등이 이탈리아계이다. 종교 분야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이 피에몬테계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이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마리오 켐페스,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마누 히노빌리, 후안 마누엘 판히오 등 세계적 스포츠 스타들이 이탈리아계 혈통을 지녔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탱고 음악가 아스토르 피아졸라, 록 음악가 구스타보 세라티, 화가 루치오 폰타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국적
아르헨티나는 속지주의(jus soli)를, 이탈리아는 혈통주의(jus sanguinis)를 채택하고 있어,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중 상당수가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해외 이탈리아인들이 이탈리아 의회에 대표를 선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르헨티나는 남미 선거구에 속하여 3명의 하원의원과 2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같이 보기
- 이탈리아 디아스포라
- 아르헨티나의 유럽 이민
-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 이탈리아계 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