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자유당(이탈리아어: Partito Liberale Italiano, 약칭 PLI)은 1922년부터 1994년까지 존재했던 이탈리아의 자유주의 정당이다. 역사적 우파와 역사적 좌파의 자유주의적 조류를 계승한 정당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소수 정당이었으나 특히 1979년 이후 이탈리아 정부에 자주 참여한 연립 정당이었다. 이탈리아 자유당은 이탈리아 자유주의 운동의 우익을 대표했으며, 좌익을 대표한 이탈리아 공화당과 대비되었다.
기원과 창당
이탈리아 자유주의의 기원은 1848년 혁명 이후 사르데냐 왕국 의회에서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 백작이 결성한 역사적 우파 의회 그룹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그룹은 온건 보수적 성향으로 중앙집권적 정부, 제한적 선거권, 누진적이지 않은 세금, 자유 무역을 지지했다.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수십 년간 이탈리아 정치를 주도했으나, 정식 정당으로 조직되지는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은 지역 지도자들의 느슨한 연합체였으며, 그 힘의 원천은 인구조사 기반 선거권과 소선거구 다수제였다.
역사적 우파에 대항한 진보적 성향의 역사적 좌파는 1876년 이른바 "의회 혁명"으로 마르코 밍게티 정부를 무너뜨리고 아고스티노 데프레티스가 총리가 되었다. 이후 데프레티스는 우파 의원들의 지지를 구했고, 이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패가 발생했다. 이 현상은 이탈리아어로 "트라스포르미스모"(trasformismo, 변형주의)라 불리며, 의회에서의 정치적 차이를 사실상 제거하여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자유주의 블록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했다.
두 자유주의 의회 파벌이 정부를 번갈아 이끌었는데, 하나는 시드니 손니노가 이끄는 보수파였고, 다른 하나는 조반니 졸리티가 이끄는 진보파였다. 졸리티는 1892~1893년, 1903~1905년, 1906~1909년, 1911~1914년, 1920~1921년에 총리를 지냈다. 졸리티는 1913년 자유주의 세력을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려 했으며, 손니노도 이에 참여했다.
창당과 파시즘 시기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보통선거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자유주의자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탈리아 사회당(PSI)과 이탈리아 인민당(PPI)이라는 두 대중 정당의 부상에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1922년 자유주의자들은 이탈리아 자유당(PLI)으로 재편성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으로 집권하면서 정권을 빼앗겼다. PLI는 국가 파시스트당과 선거 연합을 구성해 1924년 총선을 치렀으나, 파시스트를 제압하지 못했고 1926년 무솔리니에 의해 다른 모든 정당과 함께 금지되었다. 많은 자유주의 정치인들은 명예직이지만 실권이 없는 직위(예: 실권이 박탈된 상원 의석)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PLI는 1943년 저명한 지식인이자 반파시스트였던 베네데토 크로체에 의해 재건되었고, 민족해방위원회에 참여했다. 전후 엔리코 데 니콜라(자유당 출신)가 임시 국가원수가 되었고, 루이지 에이나우디가 1948년부터 1955년까지 이탈리아 대통령을 지냈다.
1946년 총선에서 PLI는 국민민주연합의 일원으로 6.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초기 PLI는 다양한 이념적 파벌을 포함했으며, 좌파 성향의 레오네 카타니와 군주제 보수파인 로베르토 루치페로가 연이어 당을 이끌었다. 1948년 온건파 브루노 빌라브루나가 서기장이 되어 자유주의자들을 당 아래로 재통합하려 했다.
조반니 말라고디 시기
1954년부터 1972년까지 18년간 당을 이끈 조반니 말라고디는 경제 문제에서 당을 더욱 우익으로 이동시켰다. 이로 인해 1956년 당의 좌파(카타니, 빌라브루나,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마르코 판넬라 포함)가 탈당하여 급진당을 창당했다. 말라고디는 이탈리아 사회당을 포함한 중도좌파 연정에 반대하며 PLI를 이탈리아의 주요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기 PLI는 1963년 총선에서 사상 최고 기록인 7.0%의 득표율을 달성했다.
펜타파르티토와 해체
1976년 발레리오 차노네가 서기장이 된 후 PLI는 더 중도적이고 사회자유주의적 접근을 채택했다. 1983년 PLI는 기독교민주당(DC), 이탈리아 사회당(PSI), 이탈리아 민주사회당(PSDI), 이탈리아 공화당(PRI)과 함께 5당 연정(펜타파르티토)에 참여했다.
1992~1994년 이탈리아 정당 체계는 "탄젠토폴리"(Tangentopoli)라 불리는 부패 스캔들이 "마니 풀리테"(Mani pulite) 수사에 의해 드러나면서 흔들렸다. PLI도 연정 파트너들과 함께 부패 체계의 일부로 지목되었다. 자유당 출신 보건부 장관 프란체스코 데 로렌초는 병자들의 자금을 횡령하고 뇌물에 기반한 의약품 상업화를 허용한 부패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혐오받는 정치인 중 하나가 되었다.
PLI는 1994년 2월 6일 해체되었으며, 그 유산을 계승하려는 여러 정당이 등장했다. 공식 후계 정당인 자유연맹(FdL), 포르차 이탈리아(FI)의 준회원 정당이었던 중도연합(UdC), 좌파 성향의 자유좌파(SL), 이탈리아 자유우파(DLI) 등이 그것이다. 이후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포르차 이탈리아로 이동했고, 일부는 중도좌파 연정에 합류했다.
재창당
1997년 스테파노 데 루카에 의해 동명의 정당이 재창당되었고, 2004년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이 새로운 PLI는 이전 우익 자유주의자들의 일부를 모았으나 곧 중도우파 연정에서 이탈해 자율적 노선을 걸었다.
이념과 성향
당의 이념적 전통은 자유주의였으며, 다양한 변형과 파벌을 포함했다. 당은 때로 세속적 보수주의와 군주제의 보루였으며, 고전적 자유주의, 보수 자유주의, 리베리스모(경제적 자유주의), 자유 보수주의, 보수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정치적 위치는 일반적으로 중도우파로, 기독교민주당보다 우측에 있었으나 때로는 중도로도 평가되었다. 당은 항상 더 진보적인 파벌을 포함했으며, 1956년 급진당을 창당한 파벌이 대표적이다. 또한 세속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여 펜타파르티토의 다른 두 중도 정당인 이탈리아 공화당과 이탈리아 민주사회당과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주요 지도자
당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는 조반니 졸리티, 베네데토 크로체, 조반니 말라고디, 발레리오 차노네 등이 꼽힌다. 서기장으로는 알베르토 조반니니(1922~1924), 퀸티노 피라스(1924~1926), 조반니 카산드로(1944, 1946~1947), 만리오 브로시오(1944~1945), 레오네 카타니(1945~1946), 로베르토 루치페로(1947~1948), 브루노 빌라브루나(1948~1954), 조반니 말라고디(1954~1972), 아고스티노 비냐르디(1972~1976), 발레리오 차노네(1976~1985), 알프레도 비온디(1985~1986), 레나토 알티시모(1986~1993), 라파엘레 코스타(1993~1994)가 역임했다.
선거 성과
PLI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중 정당이 되지 못해 큰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기독교민주당이 지배적 정치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1946년 총선에서 6.8%를 기록했고, 1963년 총선에서 7.0%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70년대에 쇠퇴하여 1980년대에는 2~3% 수준에 머물렀다. 1992년 총선(탄젠토폴리 스캔들 이전 마지막 총선)에서는 2.9%를 기록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1979년 3.6%, 1984년 6.1%(공화당과 공동), 1989년 4.4%(공화당 및 마르코 판넬라와 공동)의 득표율을 보였다.
국제 제휴
PLI는 자유주의 인터내셔널(Liberal International)과 유럽 자유민주개혁당(ELDR)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유럽의회에서 ELDR 그룹에 참여했다. 당의 상징색은 파랑이었고, 기관지로는 《로피니오네》(L'Opinione)를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