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李快大, 1913년 1월 16일 ~ 1965년 2월 24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한국인 화가이다.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필치를 구사하며, 식민지 현실과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해방 공간에서는 좌익 미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했다.
생애 이쾌대는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나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의 형은 저명한 미술 이론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이여성이다. 1932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에 위치한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유학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일본의 권위 있는 전시회인 제전(帝展)과 광풍회(光風會) 등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작품 세계 및 활동 귀국 후 이쾌대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삶을 주제로 다루었으며, 강렬한 필치와 두터운 마티에르, 그리고 어두운 색조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역동적인 구도를 특징으로 한다. 대표작으로는 <군상>,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걸인>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당대 조선 민중의 비애와 저항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복 이후 이쾌대는 좌익 미술 단체인 조선미술가동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민족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미술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이 시기에도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도 한국 근대 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월북과 그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이쾌대는 가족들과 함께 월북했다. 북한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나, 1950년대 후반 북한 내에서 벌어진 '연안파 숙청' 등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작품 활동이 위축되거나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5년 평양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나, 정확한 사망 원인이나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부족하다.
평가 이쾌대는 월북 화가라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월북 예술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그의 작품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현재 그는 한국 근대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를 담아낸 사실주의 화풍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한 형태로 연구되고 있다.